한민족은 전통적으로 책을 사랑해 왔다.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와 금속활자 인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목판 인쇄술은 7∼8세기 중국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전하는 최고(最古) 목판 인쇄물은 751년쯤 한국에서 인쇄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활자 인쇄는 세계 최초로 1041년 중국인 필승이 찰흙으로 교니활자(膠泥活字)를 만들었는데, 실용화에는 실패했다. 13세기 초 한국에서 금속활자 인쇄가 발명됐다. 1234년에서 1241년 사이에 고금상정예문 28부를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 인쇄물도 1377년 청주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는데, 2001년 9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42행 성서를 인쇄한 1455년보다 78년이나 앞선 것이다. 국내에는 보물 398호인 월인천강지곡이 남아 있다.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앞선 1447년 인쇄됐다. 우리나라에서 활자 인쇄가 발달한 배경은 적은 인구 탓에 학문하는 이들의 수가 한정된 까닭일 것이다. 공정이 간단하고 경제적인 활자 인쇄가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이런 책 사랑은 공공도서관 확충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제1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09∼2013)’에 이어서 2014년부터 5년간 제2차 종합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문체부가 2013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은 모두 808곳이다. 사립도서관 20곳을 포함하면 828곳이다. 하지만 도서관 1관 당 인구수는 6만1532명으로 아직 다른 나라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국 3만3000여명, 영국 1만3000여명, 독일 1만여명, 일본 3만9000여명과 비교된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책 사랑은 기독교 선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 처음 세례를 받은 한국인은 이수정이었다. 1883년에 동경의 노월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동경제국대학에 한국어 강사로 갔다가 쓰다센을 만나 개종한 것이다. 이후 이수정은 성경 번역의 소명을 깨닫고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이스와 존 녹스 선교사의 도움도 받았다. 1884년에는 미국성서공회의 도움으로 기존의 한문 성서에 한글로 토를 단 신약전서를 출판했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도 이수정에게서 한글을 배웠고, 그가 번역한 ‘신약전서 마가복음 언해’를 가지고 조선에 들어왔다.
1879년에 이응찬 등과 함께 세례를 받고 최초의 개신교인이 된 서상륜도 성서 번역과 떼어놓을 수 없다. 1882년에 로스 목사를 도와서 봉천에서 성서 번역과 출판 사업에 종사했다. 1883년 봄에는 로스 목사의 부탁으로 성서를 국내에 반입했다. 목숨을 건 시도였다. 1884년에는 우여곡절 끝에 6000권의 쪽복음을 반입해 황해도 솔내와 서울 일대에 반포했다. 이들의 수고에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사연들이 가득했다.
한국인의 책 사랑, 성서 사랑도 세월과 함께 변하고 있다. 세계성서공회가 집계하는 세계 성서반포가 1999년에 5030만 부로 최고 수준에 달한 뒤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3210만 권과 3340만 권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세계 교회의 형편이나 글로벌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겠으나, 디지털화와 스마트폰의 보급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성서 반포도 증감을 반복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성경 필사와 성경 읽기가 성행하고 있다. 진한 성서 사랑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다. 이 가을에는 읽고 깨달은 대로 사는 믿음의 길로 나가기를 기대한다. 변함없는 책 사랑, 성서 사랑을 넘어서 ‘말씀대로 사는 믿음’이 요청되는 시대이다.
변창배 목사(예장 통합 총회기획국장)
[시온의 소리-변창배] 책 사랑, 성서 사랑
입력 2014-09-17 03:02 수정 2014-09-17 0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