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대통령, 세월호法 입법부 소관이라더니

입력 2014-09-17 03:14 수정 2014-09-17 07:39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유가족들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무차별 공세에 섭섭함이 많을 것이다.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장단기 수습책을 발 빠르게 내놨는데도 ‘청와대 7시간’ ‘대통령 연애론’ 따위가 거론되고 있으니 참담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비롯한 수습책에 야당이 협조하지 않는 데 대한 억울함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유가족들과 야당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을 끈질기게 요구하는데도 침묵을 지켜온 데는 이런 생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6일 국무회의에서 약 한 달 만에 쏟아낸 세월호법 발언은 논리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결단 요구’를 언급하면서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지난달 19일의 여야 원내대표 간 2차 합의안이 협상의 마지노선임을 언급한 것은 실책이다. 2차 합의안이란 여당이 추천할 수 있는 2명의 특검 추천위원을 유가족과 야당의 동의가 없으면 추천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안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을 긋는 바람에 야당과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새누리당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특별법 제정이 입법부 소관이라는 이유로 한발 비켜나 있던 대통령에 대한 유가족과 야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이 ‘순수 유가족’이란 표현을 써가며 야당 내 강경파와 정치권 외곽세력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것도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본다. 특별법 타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세비 반납을 언급한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정기국회 공전으로 놀고먹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거세지만 대통령이 강조한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는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