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우울증이 찾아온 적이 있다. 사법시험에 계속 낙방하면서도 포기하지는 못하고, 한 번 더 한 번 더 하던 중 점집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희망으로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그 당시 싼 가격의 고시원이란 베니어판으로 적당히 방을 만들어 옆방 학생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곳이었다.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1주일 버티다 보니 공부는 거의 할 수 없었다. 잠도 오지 않고, 잡념만 생겼다. 밥맛도 잃었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 무조건 밖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밤에는 갈 데가 없어서 근처 교회로 들어가 장의자에 누워 밤을 새우기도 했다. 주일은 종일 그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있었다. 어느 날 목사님의 시편강독 설교를 듣다가 눈물을 쏟았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목양실로 갔다.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엄마에게서 안수기도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던 터라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늦어 자포자기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목사님은 내 머리에 손을 대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을 감고 있는데, 눈앞에 자꾸 목사님의 큰 손이 내 머리 전체를 감싸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어느덧 마음이 안정되면서 고시원에서 공부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너무나 황홀한 꿈이었다. 내가 하늘을 날면서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세계일주를 했다. 누군가 내 겨드랑이에 손을 대고 있었고, 안심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으면 휙 휙 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였다.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피라미드 등의 유명한 지형지물을 손으로 만지면서 날아다녔다. 신기한 것은 꿈에서도 꿈인 줄 안 것이다. 하나님께서 꿈으로라도 세계일주를 시켜주면서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믿음이 왔다. 잠에서 깨어 머리를 이불 속에 파묻고 울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기도가 나왔다. 감사의 기도는 처음이었다.
1차 합격하고, 2차 시험을 본 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다. 하루에도 합격일까 불합격일까를 하고 수없는 상상을 해야 했다. 가슴이 터질 듯 답답했다. ARS로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는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녹음되어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불합격’이라고 말하는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일생일대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지난번에 꿈에 나타나셔서 세계일주도 시켜주셨잖아요. 저는 불합격이라고 외치는 그 여자 목소리가 너무나 싫어요. 꿈으로 제가 합격했다는 것 미리 알려주세요.” 그리고 단서를 달았다. “앞으로 이렇게 유치한 기도는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때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합격 발표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몸이 말라갈 정도로 더 힘들어졌다. 기도를 했으니 꿈을 꾸기 위해 잠만 잤다. 그리고 합격하는 꿈을 꿨다. 기도의 응답이 내게도 일어났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 날이 왔다. 신림동 고시학원에 합격자 명단을 일찍 확보해서 붙여놓는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나 해서 받았는데, 신림동에서 내 이름을 먼저 확인한 후배의 전화였다. 합격이라니! 그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즉시 교회로 갔다. 나도 모르게 시작한 기도의 처음이 이랬다. “하나님, 그동안 제가 막말했던 것 용서해주세요.”
살면서 죄 지은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 나중에 보니 나는 회개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우리 곁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내게도 생겼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내가 힘들 때마다 구하지 않아도 꿈을 꾸곤 한다. 2012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낙선했을 때도 꿈을 꾸었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꿈이었다. “내가 언제 네 인생에서 기회를 놓친 적이 있느냐. 걱정하지 마라.”
정리=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역경의 열매] 정미경 (5) 고시촌 교회서 만난 하나님 ‘꿈·평안·합격’을…
입력 2014-09-17 03:14 수정 2014-09-17 0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