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아시아드-(5) 정지현 vs 압드발리] 매트 인생 마지막 金 도전… 세계랭킹 3위 ‘경계대상 1호’

입력 2014-09-17 04:14 수정 2014-09-17 07:39
한국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의 정지현(31·울산 남구청). 그는 2004 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급에서 금메달을 따내 한국 레슬링의 대들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후 국제대회에서 부침을 겪어 마음고생이 심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선 그레코로만형 60㎏급 은메달에 그쳤다. 정지현은 안방에서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체급을 올리는 모험을 감행했다.

정지현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경계 대상 1호로 꼽는 선수는 사이드 무라드 압드발리(25·이란)다. 66㎏급에서 김현우(26·삼성생명)를 괴롭혔던 압드발리는 파워와 기술이 뛰어나 여간 까다로운 선수가 아니다.

과거 정지현은 평소 70㎏을 훌쩍 넘기다가 대회 때만 되면 60㎏으로 줄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살을 빼는 게 힘들다고 판단해 체급을 71㎏급으로 올렸다. 모험이었다. 그는 16일 “레슬링은 감량과의 전쟁이지만 나는 살이 찌는 비법을 알고 싶다”며 체급 상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지현은 저녁을 잔뜩 먹은 뒤 체중계에 오르면 72㎏이 찍히지만 다음날 운동을 마치면 다시 70㎏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그러나 정지현의 모험은 멋지게 성공했다. 정지현은 지난 4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2014 아시아시니어레슬링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71㎏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결승에서 막사트 에레체포프(24·카자흐스탄)를 꺾은 정지현은 8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복귀했다. 2004년 60㎏급과 2006년 66㎏급에 이어 또 한 번 체급을 올려 거둔 결실이었다. 역대 한국 레슬링에서 아시아선수권 세 체급의 정상에 선 선수는 정지현과 박명석(44·창원시청 감독) 둘뿐이다. 정지현은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정지현은 체급을 올렸기 때문에 상대 선수들에게 힘에서 밀린다. 그는 “국제대회에서 만난 71㎏급 선수들은 모두 나보다 힘이 셌다”며 “상대 선수들이 대부분 키가 크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큰 점수를 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현의 키는 165㎝다. 60㎏급에선 작은 키가 아니다. 하지만 71㎏급엔 180㎝에 가까운 선수들도 많다. 정지현이 가장 경계하는 압드발리의 키는 170㎝다. 광저우아시안게임 66㎏에서 정상에 오른 압드발리는 올해부터 71㎏급에서 활동한다. 그는 지난 5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월드컵 그레코로만형 71㎏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6월 발표된 그레코로만형 71㎏급 세계랭킹을 살펴보면 압드발리는 3위에 올라 있다. 정지현은 14위에 자리했다.

정지현은 “압드발리는 빈틈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선수지만 정면에서 부딪쳐 보겠다”며 “중반까지 바쁘게 움직여 상대를 지치게 만든 뒤 기습적인 공격으로 승부를 내겠다”고 전략을 밝혔다. 안한봉(46) 대표팀 감독은 “정지현이 스피드와 지구력을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2002년 대표팀 막내였던 정지현은 어느덧 맏형이 됐다. 그는 “대표팀에서 보낸 시간도 벌써 10년이 더 지났다”며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가 나의 마지막 아시안게임이 될 것 같다. 유종의 미를 거둬 아이들에게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현에겐 ‘아금(아시안게임 금메달)’ ‘올금(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태명을 가진 두 아이가 있다. 아시안게임(광저우대회)과 올림픽(런던대회)을 앞둔 때마다 아내가 임신하자 태명을 금메달과 연관지어 지은 것. 그러나 정지현은 번번이 세계 정상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아금’이 서현(딸)과 ‘올금’이 우현(아들)은 어느덧 우리나이로 4세, 3세가 됐다. 정지현은 두 아이에게 금메달을 안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번에는 즐기는 마음으로 출전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제 큰 대회에 대한 부담은 많이 없어졌어요. 마지막 축제를 즐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평소 준비했던 대로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