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야 의미가 있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 골목상권까지 확산되어야 하며, 그 과정 속에 청년백수,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 고령자까지 참여하면 좋다. 높은 빌딩과 거대한 산업시설만이 아니라 마을 앞 공터, 동사무소 자투리 공간까지 주민 참여의 새로운 활동공간으로 거듭나면 금상첨화다. 이것이 모두가 참여하는 전인(全人)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딘가 비껴 서 있다. 재벌 대기업의 혁신을 중시하며, 철 지난 낙수효과에 기댄 규제 완화를 논의한다. 과학기술의 응용만이 창조경제라 생각하며 벤처기업 육성과 창업 활성화를 동일 언어로 인식한다. 대기업과 벤처의 혁신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고민의 출발점이다. 5000만 인구의 삶을 유지시키는 또 다른 축은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들이기 때문이다. 뒷골목의 전파상과 철물점, 치킨집과 국밥집의 세계로 내려가 새로운 혁신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름발이 경제 활성화에 불과하다.
인식이 비껴 서 있는 것은 지난달 발표된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거대 외국 병원, 외국 관광객, 외국 대학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금융과 물류, 그리고 소프트웨어산업도 강조된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호텔도, 화려한 유원지도 아니다. 아프면 찾아가는 친절한 동네병원이며, 아이들을 잘 돌봐줄 보육시설이다.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는 요양원이며 새 직장 마련을 위해 교육받을 훈련시설이다. 소위 사회서비스 영역이라고 불리는 영역인 것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서비스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꼴찌인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오히려 이 영역이다. 그러나 정책 담당자의 눈에는 화려한 호텔, 값비싼 병원, 거대한 유원지가 먼저 들어오는 것 같다. 뒷골목 경제와 뒷골목 일상생활이 간과되고 있는 사례다.
작고 소박하지만 사회서비스 영역의 혁신 사례는 아주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는 거의 모든 종류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40여명 종업원의 일자리 질도 동일 업종 전국 최고 수준이다. 정규직은 아니라도 무기계약 형태로 장기근속을 유도하며 모든 직원에게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해 준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들이 매년 점검하고 있는 성과지표다. 좋은 일자리 창출과 고용유지(8개 성과목표와 21개 세부 점검목록), 바른 돌봄서비스 공급(5개 성과목표와 14개 세부 점검목록), 돌봄서비스 공익성 확대(5개 성과목표와 12개 세부 점검목록), 지역사회 복지활동 강화(3개 성과목표와 8개 세부 점검목록)로 활동 목적을 정하고 모든 직원이 같이 평가하며 그 결과 또한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좋은 서비스와 안정된 직장 제공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산업 육성이라는 정책에서 시급한 것은 화려한 병원과 호텔이 아니라 도우누리 같은 혁신 사례를 전국 5만여개 돌봄서비스 업계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책 담당자의 인식은 필자와 한참 떨어져 있다.
20여년 전 도쿄의 한 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연구소 이사장이던 다케우치 히로시(竹內宏)는 ‘뒷골목의 경제학’이라는 저작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이해가 안 갔다. 그러나 1997년,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대기업 투자의 낙수효과가 별반 크지 않음을 인식하는 순간 뒷골목 경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화려한 대로변의 세계가 아니라 뒷골목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제학과 정책체계,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한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경제시평-김종걸] 뒷골목 경제학을 위하여
입력 2014-09-17 03:14 수정 2014-09-17 0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