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꿈은 소설가다. 엄마에게 “조금만 기다려. 소설가 딸이 되어줄게”하고 말하던 그녀였다. 그녀의 엄마는 보령터미널에서 차를 타고 한참 가다가 여기에도 사람이 살까 싶은 곳에 살았다. 그녀는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고 엄마의 집으로 들어갔다.
작년 여름 친구와 함께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날은 그녀의 엄마가 몇 년 만에 여행을 떠난 날이었다. 말로만 듣던 외딴집은 동그마니 낮은 뒷산과 논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했다. 사방이 트인 옥상에서 우리는 다섯 개의 촛불을 안내자로 삼아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는 빚을 다 갚았지만 그걸 갚게 해준 회사에서 퇴직을 당했고, 누구는 10년째 일을 그만두고 싶다 말하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있고, 누구는 꿈이 점점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그해 가을 그녀는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다시 소설 수업을 들었다. 마침 함께 살던 친구가 긴 여행을 떠나 옆방이 비었다. 친구는 흔쾌히 열쇠와 방을 내어주었다. 기묘한 동거였다. 그녀가 집에 있을 때는 내가 없거나 내가 있을 때는 그녀가 없기도 했다. 마주치지 않더라도 책상 위의 엽서, 냉장고 속 달걀과 우유, 못 보던 소설책들로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달, 그녀와 한 집을 이용했다.
시골에서 한 해를 보낸 그녀는 출판사에 취직해 서울로 왔다. 엄마는 말렸지만 그녀는 오래 일하지 않는 것이 불안했다. 한 계절이 지나 엄마는 그녀를 찾아왔다. 양손에 봄 화분을 들고서. 지병이 있어 장거리 여행이 힘들지만 부득부득 오겠다며 고집을 부렸단다.
얼마 후 그녀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친구들과 그 시골집을 다시 찾았다. 저녁을 먹으려고 상을 차렸다. 친구는 고기를 구웠고 나는 냉장고에서 소풍용 반찬통을 찾아냈다. 내용물은 완벽했다. 우리가 고기를 구워먹을 것을 알고서 준비한 것처럼 상추, 마늘, 고추, 쌈장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더는 만질 수 없고 만날 수 없지만 그 사람이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장례식장에서 그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엄마한테 소설가 엄마 만들어준다고 그랬는데….” 나는 생각했다. 이미 그녀의 마음에는 이야기가 잠재되어 있다고. 언젠가 엄마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 집에서 그릇을 몇 개 가져왔다. 이젠 음식을 할 때 그녀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시골집이 떠올랐고, 꿈을 담듯 조심스레 음식을 담게 되었다.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꿈을 그릇에 담다
입력 2014-09-17 03:32 수정 2014-09-17 0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