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팔면 더 많이 남는 큰 차냐,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작은 차냐.’
국내 자동차 산업의 방향을 놓고 정부와 업계가 잇따라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선진국 수준의 온실가스·연비 기준을 통해 시장을 중소형차 위주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이와 정반대로 수익성과 환율 요인 등을 이유로 중대형차에 치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허용 및 연비 기준 강화 방침이 새 쟁점으로 떠올랐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일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 허용 기준을 2020년까지 97g/㎞로 강화한다고 행정예고했다. 연비 기준도 24.3㎞/ℓ로 높이기로 했다.
정부 방침에는 소형차 비중을 늘리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1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국산 자동차의 차급별 비중은 중대형차(1600㏄ 이상) 63.1%, 소형차(1000∼1599㏄) 20.9%, 경차(1000㏄ 미만) 16.0%다. 10대 중 6대가 큰 차다. 중대형차의 비중은 2009년에 비해 2.6% 포인트 늘어난 반면 소형차 비중은 7.1% 포인트 줄었다. 정부는 이런 추세가 환경을 중시하는 세계적인 기류와 맞지 않다고 보고 경·소형차 판매를 촉진시키려 한다.
하지만 업계의 행보는 거꾸로다. 최근 출시한 신차는 대부분 중대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현대·기아자동차가 지난해 10월 이후 완전변경 모델로 내놓은 차는 쏘울 제네시스 쏘나타 카니발 쏘렌토다. 1.6ℓ인 쏘울을 제외하곤 배기량이 모두 2.0ℓ 이상이다.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도 올 들어 각각 SM5 D, 말리부 디젤 등 중형차급에서 신차를 내놨다.
자동차 업체들은 국내 소비자의 큰 차 선호 현상을 들며 “소비자가 중대형차를 찾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 내엔 “작은 차에 공을 덜 들이니 소비자가 사지 않는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수입차 시장에서 소형차 비중이 점차 늘고 있는 것처럼 “제대로 만들면 소형차도 팔린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가 중대형차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잡은 진짜 이유는 수익성이다. 큰 차를 팔았을 때 대당 이익이 더 많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 변동성이 심한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해외에서 고부가가치 차량을 많이 팔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지난달 미국 판매법인을 찾아 “중대형 신차 판매를 늘려 환율 위기를 정면돌파하라”고 주문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저탄소차 협력금제 논란처럼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기보다는 정부와 업계가 미래의 자동차 환경 조성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업체의 기술력을 감안해 정부가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온실가스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그간 정부의 보호로 우리 업체의 친환경 기술이 세계 수준보다 3∼4년 뒤처진 게 사실”이라며 “업체들도 환경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기획] 자동차 정책, 환경이냐 수익이냐… 정부, 탄소배출 기준 대폭 강화
입력 2014-09-16 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