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담뱃값 인상의 복잡한 고차방정식… 국민 건강 걱정해주는 정부가 왠지 불쾌하다고요?

입력 2014-09-16 04:59

흡연은 나쁜 습관이며,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충고를 거짓말로 들을 사람은 드물다.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담배는 끊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담배를 끊게 하기 위해 값을 올리겠다는 정부의 말에는 많은 불만과 불신이 뒤따른다. 지난 6월 한국납세자연맹이 흡연·비흡연자를 같은 비율로 설정해 구한 설문조사에서도 담뱃세 인상 반대 의견이 과반이었다. 왜 그럴까. 담뱃값 인상 결정에는 흡연율뿐 아니라 세수와 물가의 움직임이 복잡하게 작용한다. 그나마 과학적 연구 결과로 풀 수 있는 방정식도 아닌 정무적 판단이 개입한 정치게임이다. 학자적 소신으로 담뱃값 인상을 역설하다가 야당 국회의원이 된 뒤 서민 증세라며 정반대 주장을 펴는 이도 있다. 국민일보는 국민의 건강을 몸소 걱정해주는 정부가 어쩐지 불쾌한 이유를 살펴봤다.

◇담뱃값 인상만이 금연의 방법?=충격적으로 담뱃값을 올려야 할 정도로 한국인은 금연 생각이 없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성인남성의 흡연율은 2000년 52.9%에서 2011년 41.6%로 11.3% 포인트 낮아졌다. 이 감소 폭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담배가격 인상에 따른 재정 영향 분석' 연구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남성 흡연율은 2000∼2010년 주요 국가의 감소세 중 가장 많이 감소한 편"이라고 밝혔다.

담뱃값 인상과 흡연 포기 효과는 세계적 추세로 봤을 때 완벽한 정비례 관계가 아니기도 하다. 15일 세계 폐 재단이 운영하는 타바코아틀라스(Tabacco Atlas)와 OECD 등의 자료에 따르면 호주는 2002년 이후 담뱃값이 189.0% 비싸졌다. 하지만 흡연율은 2000년 이후 5.0% 포인트 낮아졌을 뿐이다. 같은 기간 흡연율이 비슷한 수준으로 4.8% 포인트 낮아진 미국의 경우 2002년 이후 담뱃값 상승률은 9.6%였다. 한국은 2002년보다 현재 담뱃값이 79.2% 높아져 있지만 흡연율은 11.3% 포인트 낮아져 담뱃값 오름폭에 비해 준수한 성적표를 기록 중이다.

◇장기적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흡연율이 높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 입증돼 있다. 지난해 한국재정학회는 '담배가격 인상의 소득계층별 귀착 효과 연구'에서 "다른 조건이 일정하고 타 가구원의 소득이 증가하는 경우 흡연을 할 확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고용 형태 중에서는 비정규직과 자영업자가 흡연할 확률이 높았다. 자영업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1.4개비, 임시노동직은 전문직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 직종보다 0.6개비 정도 일평균 흡연량이 많았다.

담뱃값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의 흡연율은 오히려 오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담뱃값 인상 시 금연 선택을 하고 세금 부담을 덜 계층은 고소득층이라는 얘기다. 2007년 캘리포니아-데이비스대학 프랑크 박사팀은 20년간 미국 내 소득 상위 25%와 하위 25%의 흡연율을 분석했다. 담배 한 갑의 가격은 이 기간 2.24달러에서 3.67달러로 높아졌는데, 저소득층의 흡연율은 27.7%에서 28.6%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고소득층에서의 흡연율은 23.9%에서 21.6%로 감소했다.

◇결국 담뱃값은 정치게임="일찍 죽는 흡연자는 사회에 1227달러의 이익을 남긴다."(필립모리스) "금연 20년이면 기대수명이 비흡연자의 90%까지 회복된다."(미 의회예산국) 별의별 연구 결과와 논쟁이 있지만 결국 담뱃값은 정치게임이다. 2004년 12월 제250차 국회 본회의에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과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담뱃값 인상 결정을 두고 끝장토론에 나섰다. 열린우리당은 담뱃값을 올리는 게 가장 강력한 흡연율 감소 정책이라고, 한나라당은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했다. 지금 여야가 뒤바뀐 양당은 정확히 상대방의 말을 하고 있다. 정치권의 담뱃값 담론에 진정성이 없는 이유다.

11년 전과 비교해 말이 완전히 바뀐 의원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2003년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수로 재직할 때 보건복지부가 후원하고 국립암센터·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관한 '건강증진 및 금연심포지엄' 학술대회에서 담뱃값 인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이 당시 작성한 세미나 보고서인 '담배가격과 건강증진'에는 "담배에 대한 우리나라의 가격정책은 후진국적" "담배가격 인상이 물가 인상과 가계 부담을 증가한다는 우려가 많지만, 담배가 건강 위해물질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정부의 담뱃값 인상 결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상태다.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대폭 인상도 이런 대폭 인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인상된 담뱃값이 흡연을 예방하고, 건강 증진에 활용된다는 정책적 뒷받침을 전제로 인상에 찬성했다"며 "하지만 현 정부의 금연정책은 명목일 뿐 세수 목적이라서 인상에 찬성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