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신형 쏘렌토의 선루프 프레임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힘을 주면 쉽게 구부러지는 일반 플라스틱이 아닌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에 쓰이는 강판과 강도는 비슷하지만 무게는 절반 이하로 가볍다.
현대·기아차가 양산차에서 CFRP를 적용한 것은 처음이다. 회사 관계자는 “차의 무게가 줄어 연비가 좋아질 뿐 아니라 무게 중심이 밑으로 내려가 주행 안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업계에서 CFRP는 꿈의 소재로 불렸다. 이제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가 지난 3월 ‘우라칸 LP 610-4’를 제네바모터쇼에서 선보였을 때 디자인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준 건 차체 중량이었다. 5.2ℓ 10기통 엔진을 장착한 이 차의 중량은 배기량 2.0ℓ인 쏘나타의 1460㎏보다도 낮은 1422㎏다. CFRP와 알루미늄 합금으로 무게를 낮췄다. 1마력(전체는 610마력)이 담당하는 차의 무게가 2.33㎏에 불과하다. 숫자만으로도 차의 날렵함을 짐작할 수 있다.
전기차,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에는 CFRP가 필수 소재처럼 여겨지고 있다. 배터리와 전기모터 등 친환경 동력 기관이 차지하는 무게가 만만치 않아 차체에서 그만큼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BMW는 CFRP를 사용해 전기차 i3의 차체 무게를 1300㎏까지 낮췄다. 폭스바겐은 250대만 양산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XL1’의 공차 중량을 795㎏으로 끌어내렸다. 덕분에 i3는 한 차례 충전으로 130㎞ 이상을 주행할 수 있고 XL1은 경유 1ℓ로 최대 111.1㎞를 갈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차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차도 차세대 모델을 CFRP로 제작할 계획이다.
마그네슘을 통한 경량화도 시도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이달 초 출시한 ‘SM7 노바’의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 경계에 마그네슘 판재를 장착했다. 부품 무게가 기존의 3.6㎏에서 1.4㎏으로 2.2㎏이 줄었다.
마그네슘을 단독으로 차체에 활용했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 마그네슘은 그동안 알루미늄 합금을 만드는 보조 역할을 해왔다. 순도 100%의 알루미늄은 혼자서는 강도가 약해 마그네슘 등을 결합해야 차체용으로 쓸 수 있다. 마그네슘만을 자동차 판재로 쓴 것은 SM7 노바가 처음이다. 이 회사는 포스코와 20억원의 연구비를 공동 투자해 새로운 경량화 방법을 찾아냈다. 다만 산화, 부식 등 문제로 마그네슘을 후드, 도어 등 외부 판재에 적용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철을 대체해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소재는 알루미늄 합금이다. 재규어가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공개한 스포츠 세단 XE는 알루미늄 사용이 대폭 늘어난 차체를 차별화된 장점으로 내세웠다. 고성능 모델인 XE S의 경우 똑같이 6기통 엔진을 쓰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렉서스의 차량보다 최소 350파운드(약 158㎏) 가볍다는게 제작사의 주장이다. 벤츠코리아가 지난 6월부터 국내에서 팔고 있는 C클래스도 알루미늄을 통해 차체를 키우면서도 무게를 최대 100㎏ 낮추는 효과를 얻었다.
CFRP, 마그네슘, 알루미늄 등 경량화 소재의 단점은 비싼 가격이다. CFRP의 경우 철에 비해 가격이 10∼30배 가량 높다. 알루미늄도 비싼 원가 탓에 주로 고급차 브랜드에서 현실화가 이뤄지고 있다. 새로운 소재들은 철보다 성형도 어렵다. 알루미늄으로 유선형 차체 부품을 만들려면 철에 비해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CFRP는 성형에 시간이 걸리고 수작업이 많아 대량생산이 쉽지 않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생산 라인에 변화를 주는 것도 업체에는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경량화 소재의 사용이 크게 늘 것으로 예측한다. 차량용 알루미늄 판재 생산 업체인 노벨리스는 관련 수요가 앞으로 5년간 25%씩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CFRP의 사용도 2012년 2150t에서 2020년 이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2만3000t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체 경량화는 어떤 자동차 업체도 피해갈 수 없는 핵심 과제라는 얘기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강철과 헤어지더니… 군살 싹 빼고 잘 나가는 車車車!
입력 2014-09-17 03:08 수정 2014-09-17 0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