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고교야구는 국민적 스포츠였다. 딱히 볼거리가 없던 시절, 고교야구 시합이 열리는 동대문운동장에는 구름 관중이 몰렸다. 특히 광주일고, 군산상고와 경남고, 경북고, 대구상고 등 영호남의 야구 명문고가 맞붙는 날에는 재학생, 동문은 물론 재경 출향 인사들까지 한마음으로 응원을 했다. 고교야구대회 가운데 최고는 청룡기 대회였다. 역사와 전통이 가장 오래됐을 뿐더러 고교야구대회로는 유일하게 패자부활전을 도입, 반전의 가능성을 열어 둬 짜릿한 재미를 더했다. 이 제도는 한번 패한 팀에 다시 기회를 줘 재기할 수 있도록 했다.
77년 32회 청룡기대회는 고교야구사에 길이 남는 패자부활전 승리의 드라마였다. 예선에서 인천 동산고에 패한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는 곡절 끝에 결승에 진출, 다시 만난 동산고를 7대 2로 꺾고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대구상고 포수였던 현 SK와이번스의 이만수 감독은 이때 타격과 타점, 안타 부문과 최우수선수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스포츠에서 비롯된 패자부활전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된 지 오래다. 재미교포인 가수 존 박은 2010년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효시인 ‘슈퍼스타 코리아’에서 가사를 못 외워 탈락했다 패자부활 방식을 통해 가수의 꿈을 이뤘다. 배우 장동건은 97년 상영된 코미디로맨스 영화 ‘패자부활전’에서 열연한 후 화려하게 컴백했다. 3년의 공백 끝에 출연한 이 작품에서 그는 18회 청룡영화상 남자신인상을 수상, 작품명처럼 부활에 성공했다. 지난 14일 방송된 KBS TV 102대 골든벨의 주인공인 인천 화양고의 신명규군도 패자부활전을 거쳐 우승했다. 지난 7월 치러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도 처음으로 패자부활전이 도입됐다.
패자부활은 실패한 사람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사회 정의와도 부합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경쟁에서 탈락한 최소 수혜자들을 최우선 배려해야 한다는 ‘격차원리’와 기회의 적절한 배분을 담보하는 ‘기회균등’이 정의의 본질이라고 설파했다.
국내 최초의 야구 독립구단인 고양원더스가 지난 11일 창단 3년 만에 해체됐다. 프로구단 신인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프로 입단 이후 방출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이 팀은 프로로 갈 수 있는 야구 낙오자들의 유일한 사다리였다. 이 팀의 해체로 우리 사회에 패자부활의 꿈 하나가 사라졌다. ‘열정에게 기회’였던 이 팀의 슬로건은 이젠 ‘열정’만 남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패자 부활전
입력 2014-09-16 0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