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재수해 고대 법대에 들어갔다. 합격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난 겨울여행에서 부산의 사촌언니 집에 들렀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 사촌언니는 무심코 “미경아 너는 앞으로 잘될 거래. 너희 엄마 산소에 꽃이 핀대”라고 말하는 거였다. 순간 ‘이게 무슨 말인가. 엄마는 서울에 있는데….’
아버지는 내가 죽은 엄마, 즉 앞서 밝혔듯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나이에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영원히 모르고 지나가기를 바랐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금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고, 엄마를 슬프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살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이해가 되었다. 왜 그렇게 아버지가 내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주셨는지, 매번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 끌어안고 울었는지, 판검사가 돼야 한다고 왜 노래를 부르셨는지, 왜 운동장에 데리고 가서 큰 소리 지르라고 했는지 다 이해가 되었다.
당시 분노와 의문이 나를 짓눌렀다.
“하나님 왜 생모를 데려가셨나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불쌍한 우리 아빠에게서, 불쌍한 어린 남매에게서 엄마를 데려가시지 않았을 것인데, 하나님은 진짜 계신 건지요?”
대학시절 학교 가는 대신 새로 생긴 큰 서점 바닥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내 질문에 답을 해줄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1년간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결론을 내렸다. 세상 책에는 답이 없고, 성경 안에 답이 있는데 문제는 그 성경이 진짜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사실이어야 해요.” 이때까지는 하나님을 머리로 이해하는 정도였다. 하나님은 성경책 속에만 계시는 것 같았다. 신앙적 방황은 생각보다 길었고, 내 인생은 뒤죽박죽이었다. 사법시험이 내게 멀어져만 갔다.
아버지는 방황하는 딸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슬픈 표정으로 “미경아, 네 마음 다 안다. 그래도 판검사가 되어주라”며 사정조로 말했다. 한편으로 아버지가 가엾고, 또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미웠기에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과 달리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시험에 자꾸 떨어지다 보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같이 공부하던 선배 언니가 시험 운이 있는지 점쟁이에게 가서 물어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결국 그 언니를 따라 점쟁이에게 갔는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2층 양옥집이었다. 괜히 왔다는 생각과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5분이 지나도 점쟁이가 나타나지 않아서 잘됐다 싶어 가려고 하니까 선배 언니가 알아보고 온다며 나를 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확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아,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점쟁이 만나는 거 막으시는 거다.’ 혼비백산해 계단을 뛰어내리면서 점집을 빠져나왔다. 그 다음 날 알게 된 결론은 이랬다. 그 점쟁이가 전화 한 통 받고 나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정신이 들어보니 어느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더라는 얘기였다. 나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나님은 성경 밖에서도 계신다.’ 이후 하나님을 깊이 알고 싶은 내 열망이 커져만 갔다. 하나님도 성경 밖에서 살아 움직이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내게 은밀한 가운데 보여주시고 응답해주셨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 내 스무 살의 질문에 하나님이 답을 주셨다.
‘엄마 잃은 내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날 불쌍히 여기고, 어여쁘게 생각한 지금 엄마의 진실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이고, 그 사랑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정리=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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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9-16 0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