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10년 전, 금연 효과 없다더니… 정반대 논리로 ‘꼼수 증세’

입력 2014-09-15 04:56

담배가격 2000원 인상이 정부의 '꼼수 증세'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재정 당국은 10년 전 담뱃값을 올릴 때 갖은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에 이번 인상은 더욱 설득력을 잃고 있다.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손쉬운 길을 택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03년 7월 보건복지부는 2004년 건강증진부담금 조정을 통해 담뱃값을 1000원 올린 뒤 2007년까지 2000원을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자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는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재경부는 담뱃값 인상이 물가 불안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담뱃값을 1000원 올리면 소비자물가가 0.78% 포인트 추가 상승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물가상승률은 3.5%에 육박하는 상황이라 재정 당국으로선 물가안정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재경부는 가격정책에 따른 금연 효과도 크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1990년 이후 4차례의 담뱃값 인상에서 흡연율이 인상 직후 떨어졌지만 3개월 뒤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경험을 근거로 들었다. 재경부 반대에 복지부는 "재경부가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유리한 자료만 인용하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결국 재경부와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담뱃값은 500원 올리는 정도에서 결정 났다. 이후에도 인상 논의가 있을 때마다 재정 당국은 반대했다.

이번 담뱃값 인상 논의에서 기재부는 이전과는 정반대 논리를 펼치며 찬성했다. 가격이 흡연율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문창용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격정책은 가장 강력한 흡연 억제책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지난 11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가격정책과 비가격정책을 모두 망라한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2003년 당시 자신들이 반박했던 복지부의 주장을 이제는 기재부가 하는 모양새다.

물가에 대한 입장도 사뭇 다르다. 기재부는 담뱃값이 2000원 비싸질 경우 소비자물가는 연간 0.62% 포인트쯤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담뱃값 인상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지만 최근 물가안정 기조가 유지되고 있어 물가안정 목표 내에서 흡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저물가 기조가 디플레이션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하는 재정 당국의 입장에선 어느 정도 물가가 오르는 것은 오히려 반가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궁색한 재정 당국의 입장 변화 근원은 세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1일 최 부총리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을 5.7%로 잡았다고 밝혔다. 쓸 곳은 더 많아지는데 세금은 걷히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연간 2조8000억원가량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담배에는 부과되지 않던 개별소비세 세목도 신설해 국세 수입도 늘릴 계획이다. 이번 담뱃값 인상은 결과적으로 흡연자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데 쓰이는 형국이다.

한편 정부는 내년부터 담뱃값을 물가와 연동시켜 소비자물가가 5% 오를 때마다 담뱃값도 물가 상승분만큼 자동적으로 오르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담뱃값을 매년 인상하기보다 물가 누적상승률이 5%가 되는 시점에서 담뱃값을 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2∼3%라고 가정하면 담뱃값은 2∼3년에 한 번씩 오르는 식이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