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한 병원. 검은 얼굴의 인도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 갓 태어난 아기는 백인이다. 이 아기를 만들어낸 난자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니는 젊고 아름다운 여대생의 것이다. 미국의 한 부부가 이 난자를 사들였다. 의사는 탈진한 인도 여성의 품에서 아기를 끌어내 미국에서 온 부유한 불임 부부에게 안겨준다. 울고 있는 인도 여성을 뒤로 하고 부부는 행복한 표정으로 잔금을 치르고 아기를 데려간다.
◇엄마가 세 명인 아기=이 내용은 이스라엘의 지피 브랜드 프랭크 감독이 2009년 발표한 다큐멘터리 ‘구글 베이비’의 한 장면이다. 자신을 ‘베이비 프로듀서’라고 소개하는 남자는 아기를 원하는 여성에게서 돈을 받고 원하는 유전자를 ‘쇼핑’하게 해준다. 이렇게 구입한 정자와 난자는 외부에서 인공 수정돼 제3자의 자궁에 착상된다. 난자를 제공한 여대생, 그 난자를 산 미국인 여성, 뱃속에서 열 달을 품은 인도 여성 중 아기의 엄마는 누구일까.
이런 상황은 먼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20만 불임 환자들 역시 대리모 시술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정부가 대리 임신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관리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불임 환자들은 불법 행위로 내몰리고 있다.
결혼 9년차인 이주연(가명·여)씨는 최근 고민 끝에 대리모 시술을 결정했다. 2010년부터 4년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뒤였다. 난임 끝에 찾은 병원에서 자궁근종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지만 자궁 유착이 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팔관 양쪽이 막히는 바람에 세 차례의 시험관 시술과 두 차례의 냉동배아 시술에 모두 실패했다.
이씨는 지난달 병원에서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1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리모 시술을 결정한 지금은 차라리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며 “불법이라도 저지르고 싶은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고 되물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난임·불임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지난해 기준 20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윤리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며 대리모 시술과 난자 매매에 손을 대는지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예쁘고 똑똑한 난자 삽니다”=음성적으로 형성된 난자 시장에서는 ‘젊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예쁜’ 여성들의 난자가 인기다. 난자 매매 브로커들은 인터넷을 통해 판매자와 구매자를 알선한다. 오프라인에서 ‘떴다방’ 식으로 사무실을 차려놓고 영업하는 경우도 있다.
2011년 10월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인터넷으로 대리모를 모집해 불임부부에게 난자를 제공하고 대리 출산을 알선한 혐의(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브로커 A씨(50) 등을 구속했다.
이들은 ‘인공수정 합숙소’를 차려놓고 난자와 자궁을 팔았다. 당초 대리 임신만 알선했으나, 수정 가능한 난자를 만들지 못하는 불임부부들의 요청에 따라 불법 난자 매매에까지 손을 뻗쳤다. 불임부부의 남편과 대리모가 부부로 가장해 병원에서 인공수정을 받아 임신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맞춤형’ 난자 브로커도 등장했다. 같은 해 6월 경찰에 구속된 브로커 구모(40·여)씨와 정모(29)씨는 혈액형은 물론 학업과 외모 등 불임 부부가 원하는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난자 판매자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했다. 대부분 20∼30대인 판매자 중에는 명문대 학생과 모델, 학원 강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한 번에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받았다. 학력이 좋거나 외모가 출중할수록 금액은 올라갔다. 일부 판매자들은 경찰에서 “급전이 필요해서 불법인 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해외에서도 한국인의 난자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 수준이 다른 국가보다 높다 보니 ‘똑똑한’ 아기를 가질 확률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난자 하나당 1만 달러에 안팎에 거래되기도 한다. 2012년 미국 LA의 한 지역신문 홈페이지에는 “토종 한국인 여성의 난자를 판다”는 광고가 실려 논란이 일었다.
난자 추출 과정은 여성의 몸에 매우 큰 부담을 준다. 무리하게 몸에서 난자를 빼내다 보면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자칫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큰돈을 손쉽게 벌 수 있다’는 판매자들의 욕심과 아기를 원하는 불임 부부의 소망이 맞물려 불법 난자 매매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음지서 번성 중인 대리모 시술 (상)] 불임 20만명 시대… 엄마가 셋, 영화 아닌 현실로
입력 2014-09-15 0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