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인권도 압박 카드로 본격 활용… 對北정책 틀 변화

입력 2014-09-15 03:54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총회 기간 개최되는 북한 인권 관련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미 정부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시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인권개선 문제가 종교계나 인권단체들만의 관심사를 넘어 미 정부 차원의 중요한 대북정책 목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음을 단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동안 의회를 중심으로 미 정치권 일부도 북한 내 인권침해에 보다 강력히 대응할 것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촉구해 왔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주요 목표인 동시에 대북 압박카드 차원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초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나온 이후라는 게 정설이다.

케리 장관은 같은 달 27일 미 국무부의 ‘2013 국가별 인권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면서 북한에서 대규모 고문과 반인륜적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COI가 발표한 인권침해 상황도 상세히 묘사했다. 그는 지난달 13일에는 “북한의 강제노동 수용소(Gulag)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의 외교정책 수장이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강제노동 수용소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었다.

지난 4일 시드니 사일러 신임 6자회담 특사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사일러 특사는 취임 후 첫 외부 강연이었던 이 자리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여러 차례 거론하며 “핵문제와 인권문제는 상호배타적이거나 모순적인 정책목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두 가지 어젠다를 ‘투트랙’으로 가져갈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한·미 양국 정부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주최하는 북한 인권 관련 고위급회의에는 케리 장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외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유럽의 외무장관 등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해온 대부분 나라들이 참석할 전망이다. 한·미는 회의에서 이번 유엔총회 기간 중 대북 인권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이수용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사전에 감지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COI 보고서 발표에 이어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채택되면 이는 북한에 심각한 외교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이 외무상은 기조연설 및 각국 외교사절들과 접촉을 통해 조직적 반박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13일에 방대한 분량의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이런 다급함 때문으로 보인다. 보고서의 골자는 “북한의 인권보장제도 속에서 주민들의 정치·사회·문화적 권리가 충분히 보장돼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북한에 억류된 3명의 미국인 석방 문제가 걸려 있어 ‘수위 조절’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미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를 주요한 대북 정책목표 및 압박카드로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