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외부인사 영입 문제로 홍역을 치르면서 정치권의 명망가 ‘수혈 정치’가 논란이 되고 있다. 여야는 총선·대선 등 주요 정치 국면마다 유명 교수 등 외부 저명인사를 영입해 민심에 호소하는 방식을 즐겨 썼다. 전문가들은 정치 혁신이라는 ‘빛’보다는 일회성 이미지 정치라는 ‘그림자’가 더 많았다며 정당이 자생 능력을 먼저 키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명분으로 보수인사인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와 진보인사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나란히 영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다. 당내 계파나 이해관계에 무관한 외부인사가 당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중도층 외연확대도 겨냥했다.
2012년 대선 때도 여야가 외부인사 ‘영입전’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 교수를 수혈했다. 새정치연합(옛 민주통합당)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안 교수를 문재인 후보 캠프로 불러들였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상임고문도 무소속 대선 후보 당시에는 소설가 조정래씨를, 국회에 입성한 이후에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영입했다.
정치권이 때만 되면 외부에 손을 내미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불신, 정치혐오가 크기 때문이다. 정당 안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정당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외부의 시각으로 혁신하는 장점도 있지만 뭔가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국민 홍보’가 가능한 측면을 고려했다. 또 계파갈등 등 민감한 내부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장점이 가능성에 그칠 뿐 실제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권이 없고 당내 사정에 어두운 외부 인사가 실질적으로 당을 바꿀 수가 없어 당의 이미지 개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더 많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4일 “외부인이 들어가면 당내 역학관계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선거나 위기상황이 끝나면 혁신은 싹 잊혀져 버리고 오히려 정당의 자생 능력만 상실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대선 이후 새정치연합은 서울대 한상진 교수에게 대선 평가를 맡겼으나 당내 분란만 불거졌고 대선평가보고서에도 먼지만 쌓였다. 새누리당도 대선 당시에는 김 전 수석의 경제민주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집권 이후에는 경제민주화라는 말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다. 외부 인사가 실권을 갖고 개혁을 한 사례로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재승 변호사 사례 정도가 언급되는 수준이다.
외부 명망가들은 여야를 오가며 만남과 결별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 교수는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했다가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으로 오려다 당내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윤 전 장관은 대선 당시에는 새정치연합 후보였던 문재인 상임고문과 함께했다가 이후에는 안 고문 쪽으로 합류했다. 최 교수도 안 고문과 얼마 못 가 각자의 길을 갔다. 외부 인사 풀도 바닥나 매번 비슷한 인사가 언급되면서 ‘폴리페서’(현실정치에 뛰어든 대학교수) 논란도 반복됐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등에서는 정치권이 교수를 영입해서 당의 위기상황을 탈피하지는 않는다”며 “정당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능력이 없어 명망가에 기대는 정치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성수 최승욱 기자 joylss@kmib.co.kr
[기획] 위기 때마다 ‘수혈 정치’… 백지화된 野 ‘이상돈 카드’로 본 외부인사 영입 명암
입력 2014-09-15 0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