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 대안 없어, 고쳐서 더 낫게 만들어야”… 장하성 고려대 교수 신간 ‘한국 자본주의’

입력 2014-09-15 03:20

“자본주의 종말이 오지 않는 것은 대안 없이 지금 체제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 고쳐서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차선의 선택이다.”

한국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주장하며 만든 ‘장하성 펀드’로 유명한 장하성(사진)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최근 신간 ‘한국 자본주의’를 펴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이 비판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대안 체제를 찾지 못했다면,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장 교수는 이 책에서 기형적인 경제발전 역사를 가진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 채 미국과 유럽 관점에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모순과 실패 탓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틀렸다고 말한다. 장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1960년대 박정희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김영삼정부의 ‘신경제 5개년 계획’까지 30년 이상 계획경제를 해 왔다. 계획경제 하에서 정부는 음식값, 목욕탕 요금, 여관 숙박료, 미용실 요금, 심지어 다방 커피값까지 결정했다. 시장경제 전환 후에도 이 같은 정부의 시장 개입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 교수는 한국의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경제 권력은 정부에서 시장이 아닌 재벌로 이동됐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결과적으로 “한국경제는 신자유주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규칙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민자본주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났고, 권력이 재벌에 넘어갔는데도 이를 규제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하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진단했다.

최근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에 대한 장 교수의 평가도 눈길을 끈다. 장 교수는 피케티가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자본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그의 분석 결과를 다른 나라에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반론을 폈다. 한국을 포함한 모든 신흥 시장국가에서는 피케티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자본 수익률>성장률’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한국은 자본세로 정부 수입을 늘려서 재분배하는 정책보다 적극적인 노동정책이나 임금정책을 통해 일차적 분배를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 책을 2010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한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의 비판과 대안이 틀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장 교수가 본 한국 자본주의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자본주의는 ‘돈’이라는 무기가 있지만 민주주의는 ‘1인1표의 투표’라는 무기가 있다.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정의롭게 작동하려면 노동으로 삶을 꾸리는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민주적 정치 절차를 통해 자본가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