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생활협동조합에 이어 마을 소개 ‘꼽사리 영화제’까지… 교회 성장 내려놓고 “마을을 살리자”

입력 2014-09-15 03:56
새롬교회가 운영하는 경기도 부천 새롬지역아동센터에서 지난 11일 약대동 지역 초·중등 학생들이 방과 후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새롬교회 이원돈 목사가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꼽사리 영화제' 벽화를 가리키는 모습.
이원돈(56·경기도 부천 새롬교회) 목사는 주민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할머니, 허리는 좀 어떠세요.”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따뜻한 정이 묻어났다.

지난 11일 부천 원미구 수도로 ‘신나는 가족도서관’ 앞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부천시 제1호 사립문고’로 지정된 이곳은 약대동의 어린이 양육과 가족관계 개선을 위해 새롬교회가 1997년 세운 곳이다. 하지만 이 도서관은 새롬교회의 지역섬김 사역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이 목사는 30여년 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고등부 간사로 일하면서 KSCF가 작성한 빈민지역조사보고서를 통해 약대동의 실태를 알게 됐다. 그는 “약대동은 1970∼80년대 경제성장 당시 탄생한 대표적인 도시빈민지역”이라며 “한부모 가정이 많았고, 주민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로 교육과 문화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약대동에서 사역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86년 새롬어린이집을 먼저 세워 방치된 어린이들을 돌봤다. 이후 교회를 짓고, 도서관의 전신인 약대글방과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섬김에 나섰다. 이 목사는 “당시 약대동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인데도 한글을 떼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고, 방과후 또래와 어울릴 곳이 없어 가출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들이 머무를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지역아동센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원은 고사하고 개인 공부방조차 ‘사치’였던 초등학생과 중학생 수백명이 이곳에서 친구를 만났고 꿈을 키웠다.

10여년 섬김 사역으로 주민들의 신뢰는 얻었지만 약대동에 드리워진 그늘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는 “약대동 사람들은 생활에 안정을 찾으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마을을 떠나곤 했다”면서 “남은 사람들은 생활고로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많아 이웃 사이에 정을 나누기 힘든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에 98년부터 사역의 초점을 ‘마을 살리기’에 맞췄다. 새롬교회는 시민단체 및 약대동 주민센터 등과 협력해 새롬가정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독거노인 및 차상위계층 등을 위한 도시락 배달, 체조·한글교실 운영 등을 해왔다.

지난해 9월에는 생활협동조합 ‘떡 카페 달나라 토끼’를 설립했다. 카페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떡을 제조해 공정무역 커피 및 전통차와 함께 판매하고 있다. 생협 조합원들은 새롬교회 교인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의 가정을 찾아가 떡과 기도를 나누며 심방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약대동을 소개하는 ‘꼽사리 영화제’도 열었다. 이 영화제는 부천시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를 개최할 때 약대동도 자체 영화제를 열어 마을을 소개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새롬교회와 약대동 주민자치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부천영상미디어센터 등이 후원한 영화제에서는 약대동 주민과 마을 이야기를 담은 영화 8편이 소개됐다. 영화 상영 외에 나눔장터, 노래자랑 등의 행사도 열었다.

새롬교회의 성도 수는 90∼100명 정도다. 주민들의 유출입 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지만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벅차 보인다. 이 교회 김현자(54·여) 권사는 "큰 교회는 아니지만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섬김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길 잃은 어린양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현재 교회와 주민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됐고, 마을 분위기도 한층 활기를 띠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하지만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이웃과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면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부천=글·사진 이사야 기자 isay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