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기춘엔 돌직구… 최경환엔 견제구… 김무성 목소리 키운다

입력 2014-09-15 03:35 수정 2014-09-15 09:32
짙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2014 은총이와 함께하는 희망나눔 철인3종 경기대회’ 개회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여권 핵심 실세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당권을 장악한 김 대표가 너무 이른 타이밍에 전선(戰線)을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강한 여당론’을 내세우며 ‘할 말은 하겠다’고 밝힌 김 대표는 최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왕실장’으로 불리는 김 실장과 경제수장인 최 부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14일 “김 대표 체제가 등장하면서 여당의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 측은 “여권 내부의 건강한 비판과 토론 과정”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박 대통령 유언비어 퍼진 것은 김 실장 책임”=김 대표가 7·14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직후 당·청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변화의 기대감이 확산됐다. 김 대표는 당직 인선 과정에서 김 실장과 수시로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기류는 서서히 변화했다. 당·청 관계에 불협화음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들이 고개를 들었다. 김 대표가 김 실장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가 열렸던 지난달 22일. 김 대표는 루게릭병 환우를 돕기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동참해 머리 위로 얼음물을 맞았다. 그는 다음 아이스버킷 주자로 김 실장을 지목하며 “너무 경직돼 있다”면서 “찬물을 맞고 좀 더 유연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 직설적인 발언은 뒤에 나왔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돌직구를 날렸다. 김 대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그런 유언비어가 퍼진 건 국회에서 답변을 잘못한 김 실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실장 측을 겨냥해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의견은 엇갈린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당 대표로서 할 얘기를 한 것”이라며 “여당 대표가 그 정도 말도 못하나”라고 옹호했다. 하지만 다른 의원은 “김 실장의 심기가 불편한 것으로 안다”면서 “김 대표는 여권의 단합을 위해 표현 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 잠룡들 간의 경쟁, 조기 점화되나=김 대표가 친박(친박근혜) 주류의 견제를 집중적으로 받았을 때도 최 부총리에 대해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 부총리도 김 대표를 깍듯이 대했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 정치적 장애물이 두 개 생겨났다. 하나는 최 부총리가 주도하는 경제활성화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영남 신공항 문제다.

김 대표는 지난 2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최 부총리의 성(姓)을 딴 ‘최노믹스’에 대해 ‘가시 있는 말’을 던졌다. 김 대표는 “최노믹스식의 재정 경제 확대 정책만 갖고는 (한국 경제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면서 “노사가 서로 양보하는 타협을 해야 하는데 최노믹스에는 그게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에는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재정건전성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여당 대표와 경제부총리 간의 공개 논쟁은 분명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몇 %인가”라고 물었다. 최 부총리는 “35.8%”라고 답한 뒤 “30%대는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 대표는 “그건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라고 재차 따졌고 최 부총리도 “미국 등에서는 공기업 부채를 재정건전성을 산출하는 데 포함하지 않는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김 대표는 “미국에는 공기업이 없다”면서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재정적자 규모가 60%를 넘는다”고 논쟁을 이어갔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2016년 총선을 이끌고 2017년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 수도 있는 김 대표에게 최노믹스는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했다. 최노믹스가 성공하면 최 부총리가 여권의 다크호스로 부상해 김 대표를 위협할 수 있다. 반면 최노믹스가 실패할 경우 최 부총리는 물론 김 대표도 정치적 피해를 뒤집어쓸 우려가 있다.

대구·경북(TK)과 부산이 입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영남 신공항 문제도 화약고다. 김 대표는 부산을, 최 부총리는 TK를 각각 대표하는 정치인이라 이슈가 불붙으면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펼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