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수준 상승과 더불어 제조업이 차지하는 생산과 고용의 비중은 하락하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지는 게 보통이다. 이른바 탈공업화 현상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겪어온 경로다.
한데 한국은 1990년대 탈공업화를 경험한 후 2000년대에 들어와 제조업 생산 비중이 되레 올라가고 있다. 지난달 ‘한·일 새로운 성장모델의 모색-양국의 경험과 미래’를 주제로 열린 국제세미나에서 산업연구원(KIET) 강두용 박사는 ‘한국경제의 재공업화’ 논문에서 그렇게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88년 30.1%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97년엔 25.4%까지 줄었고 이어 몇 년 동안 오르내림을 거듭하다가 2003년 25.8%를 기록, 제조업 비중 감소가 궤도에 들어서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제조업 비중은 꾸준히 늘어 2011년엔 31.3%까지 솟구쳤다. 이러한 추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 중심의 수출구조, 고환율 등이 크게 작용했고 특히 중국의 공업화와 관련해 대(對)중국 중간재·자본재의 수출이 늘어난 것도 큰 요인이다. 문제는 제조업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고용 증가는 동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은 제조업에 의존하고 있지만 고용창출은 서비스업에 편중되고 있는 분절적 경제구조가 문제다. 이러니 성장의 몫이 고루 분배되지 않는 것은 불문가지다.
요약하자면 과거 압축성장의 핵심 고리로 작동했던 수출·대기업이 내수·중소기업과는 동떨어진 채 따로 논다는 것이다. 수출이 아직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과도한 자영업자들의 존재는 서비스업의 영세성, 낮은 생산성의 근본원인으로 작용한다. 경제정책이 내수·중소기업·서비스업에 집중돼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말끝마다 대기업들의 투자부진을 지적하며 투자를 늘릴 것을 주장한다. 다만 대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더라도 특유의 분절적 구조를 감안하면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대를 메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등 시장에 경제회복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본질을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부동산시장을 자극해 자산가치 상승을 통한 ‘부(富)의 효과’를 통해 내수를 부추기려는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부동산시장의 정체가 과거의 거품이 시나브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면 일부러 자극을 시킨다고 해도 그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면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신호를 보낸 정책당국에 대한 더 큰 불신이 야기될 수도 있다. 앞서 소개한 국제세미나의 참석자들은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해 최종 평가는 유보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성과’란 엔저(低) 동향이나 물가상승률 등의 수치 목표 달성여부가 아니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 오랫동안 팽만했던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에서는 정부를 믿지 못하고 정책을 기대하지 못한 채 각자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었다. 그 공감대를 일본국민들은 폐색감(閉塞感)이라고 불렀다. 꽉 막힌 공간에 갇혀 있다는 느낌, 그 안에서는 그 어떤 미래도 보이지 않았고 꿈도 꿀 수 없었으며 그저 하루하루 무기력한 시간이 흐를 뿐이었다. 그랬던 일본사회가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는 얘기가 일본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요즘 ‘한국사회가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빠지는 것 아닌가’, ‘디플레이션은 이미 시작됐나’ 등의 논란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가타부타 논하기 전에 분명한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감, 이른바 한국판 폐색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꽉 막힌 방에 갇혀 있다는 느낌
입력 2014-09-15 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