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성신여대 강태훈 교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쉼터 등 지원시설 청소년 531명과 대안교육시설 청소년 782명을 대상으로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청소년 중 절반 이상(65.7%)은 고등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교 1학년까지 학교를 다니다 자퇴한 학생이 46%로 가장 많았다. 이는 고1 이전에 학교에 대한 인식을 달리 심어주고 보듬으면 '학교 밖 청소년'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학교를 떠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 있는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을 품는 것. 학교이탈 청소년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국민일보 꿈나눔 캠프' 4기는 이들에 포커스를 맞췄다(2014년 3월 10일자 1·8·9면, 6월 11일자 1·4·5면 참조). 학교 밖 청소년이 될 뻔했던 학생 7명이 사흘간의 캠프를 거치면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꿈을 찾았다. 그리고 그 꿈을 학교 울타리 안에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의 A중학교 추천을 받아 참가한 3학년 학생 7명은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국민일보 꿈나눔 캠프'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학교 공부에 관심이 없거나 잦은 결석과 탈선으로 '문제아'처럼 여겨지던 아이들이었다. 7명은 모두 학교에 반감이 크지만 아직 자퇴까지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사흘간 멘토들과 1대 1 상담과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했다.
◇관심이 필요해 '탈선'을 택한 아이들=성준(이하 가명·14)이는 과거 평범한 아이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달라졌다. 선생님이든 친구든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다. 성준이는 관심을 받기 위해 담배를 택했다. 그러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렸고 점점 '문제아'가 돼갔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성준이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은 방과 후 성준이를 불러 기초과목 공부도 따로 시켜줬다. 그러나 지난해 같은 학교 학생을 때려 강제 전학하게 됐다.
전학한 학교에서 성준이는 '투명인간'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나 공부 수준을 확인해주는 선생님도 없었다. 보듬어주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반감이 커져 갔다. 관심을 받기 위해 시작한 담배였지만 성준이는 담배가 싫다고 했다. 그는 "왜 끊어야 하는지 좋은 말로 설명해주는 선생님이 있다면 끊을 텐데…"라고 했다.
캠프에서 편지 쓰는 시간이 있었다. 청소년기를 마치고 성인이 됐다고 가정해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어른의 눈으로 되돌아보는 시간. 성준이는 자신에 대해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나쁜 친구들과 사고도 치고 폭력도 쓰고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했다. 중학교 시절이 끝나고 고등학생 때는 깡패 생활을 했다. 그렇게 철없이 놀다가 교도소에 들어갈 뻔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금 뒤돌아보면 후회만 가득하다.' 지금의 모습처럼 살아간다면 후회가 가득한 삶을 살게 되리란 것을 성준이도 알고 있는 듯했다.
준영(14)이는 중학교 1학년 때 '실패'를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꽤 잘했던 준영이는 중학교 진학 후 최악의 성적을 받았다. 그는 "죽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은 157등을 했다"며 "공부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후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어울리며 공부를 포기한 '문제아'가 됐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힘든 형편이지만 준영이를 학원에 보내고 있다. 준영이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에 억지로 학원에 간다. 하지만 늘 자다 오기 일쑤다. 그래도 좋아하는 과목은 있다. 바로 역사. 한국사와 중국사를 꿰고 있는 준영이는 상담교사와 역사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이 반짝였지만 "잘하는데 왜 더 공부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표정이 굳어졌다. 준영이는 "이제 와서 다른 애들이랑 성적으로 겨룰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교실에 들어가면 선생님한텐 난 그냥 '공부 못하는 아이'일 뿐이다. 선생님은 내겐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 알지만…"=캠프 첫날에는 '인생 곡선 그리기' 수업이 진행됐다. 7명 학생들은 태어났던 순간부터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행복도'를 꺾은선 그래프로 그렸다. 놀랍게도 7명 모두 중학교 3학년을 보내고 있는 현재를 '가장 불행한 시기'로 꼽았다.
윤정(14·여)이의 행복 그래프는 13세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중학교 입학은 윤정이에게 '방황을 시작한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의 행복도를 표기하는 그래프는 종이 가장 아래까지 내려갔다. 윤정이는 그 옆에 '모든 게 힘듦'이라고 적었다.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것이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 앞에선 당당했지만 자신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윤정이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 알아요"라고 말했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 것 같은 불안함이 든다고도 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첫째 날 미술 활동 시간에 첫 발표를 했던 정혁(14)이는 다른 친구가 더 큰 박수를 받자 자신이 만들었던 박스를 구겨 버렸다. 친구들이나 상담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절반은 욕이었다. 이야기를 건네면 "짜증나게 그런 걸 왜 물어봐요?"라고 쏘아붙이곤 했다.
그러던 정혁이가 둘째 날부터 마음을 열었다. 이날 수업에서는 가수 '커피소년'의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라는 노래를 각자 개사해 발표하기로 했다. 정혁이는 속마음을 노랫말에 담았다. '선생님이 나와 상담하재. 잔소리를 끊임없이 하네. 중학생이 돼서도 나쁜 짓 잘하네. 정말로 화가 나네'라는 가사로 노래를 부르며 정혁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꿈에 다가가는 아이들=선생님과 부모의 잔소리와 질책에 익숙한 아이들은 칭찬과 박수에 어색해했다. 교실에선 문제아로 통했고 꿈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실망하며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캠프 상담교사들은 꿈을 꾸는 방법을 보여줬다. 중졸의 학력에도 대형 미용실의 원장이 된 헤어디자이너 이야기, 길거리 떡볶이 장사꾼에서 국내의 대표적 분식 프랜차이즈를 일군 기업인 이야기, 닭 10마리로 닭고기 유통업체 사장이 된 이야기…. 어쩌면 자신보다 못한 환경 속에 놓여 있던 이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아이들은 캠프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며 각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치원 교사, 정비 기술자, 강력계 형사 등 구체적인 꿈을 찾았다.
사흘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배웠다. 캠프 마지막 날 가상의 '자서전'을 만들며 서로 칭찬 편지를 썼다. 윤정이를 칭찬하는 종이에는 '볼이 빵빵한 게 귀여워' '열정적인 너의 모습 멋져' 등이 적혀 있었다. 캠프 기간 내내 피곤하다고 투덜대던 정현(14)이는 교육이 끝나자 "칭찬 편지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자신이 받은 칭찬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할 수 있다는 '격려'와 '칭찬'을 기다려온 듯했다.
캠프를 진행한 어나더챈스 박진용 대표는 "아이들의 꿈의 씨앗을 잘 자라도록 하는 것은 이제 학교의 역할"이라며 "문제아라는 낙인보다 이런 소중한 꿈이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관심과 격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기획] 문제아 취급받던 아이들, 꿈과 ‘소중한 나’를 찾았다
입력 2014-09-15 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