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덴 듯 화끈 화끈… ‘불타는 입증후군’ 도대체 정체가 뭐야

입력 2014-09-15 03:45
기찬병원 김찬 원장이 삼차신경의 이상으로 극심한 안면 통증을 호소하는 한 폐경 여성을 신경차단술이란 고난이도 시술로 치료하고 있다. 기찬병원 제공

김연남(74·가명·경기도 수원시)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입이 화끈거리고 아파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아랫입술 가운데 부위가 아팠다. 그렇게 시작된 입술 통증은 점차 입술 전체로 퍼져 조이는 듯 아프고, 마치 ‘안티프라민’ 연고를 바른 것처럼 화끈거렸다. 두세 달 전부터는 입술뿐만 아니라 혀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입 주변이 화끈거리며 입안이 건조해져 혀도 사포처럼 마르며 꺼칠꺼칠해지고 아팠다. 이런 입 통증은 밤이 되면 더 심해졌다.

참다못한 김 할머니는 결국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와 피부과, 치과까지 찾아가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같이 특별한 이상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자신은 불에 덴 듯 입이 화끈거리고 아파 죽겠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약을 먹으면 조금 덜 아픈 듯이 느껴지기만 할 뿐 통증은 여전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입안이 화끈거리고 아프다고 호소하는 노인들이 있다. 한 번 발병하면 좀처럼 낫지를 않아 심지어 혹시 암이 아닐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불타는 입증후군(Burning Mouth Pain)이란 조금은 생소한 병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만성 및 난치성 통증치료 전문 기찬병원 김찬 원장(전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은 14일,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그렇게 드문 병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불타는 입증후군이 어떤 병이기에 사람을 이토록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폐경 여성의 12∼18%가 겪는 고통=김 원장에 따르면 불타는 입증후군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3배가량 더 많이 발생한다. 특히 폐경 이후의 여성 인구 중 약 12∼18%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 수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불타는 입증후군이 이렇듯 고령의 여성 노인에게 유독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크게 3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혀 상피에서 통증과 온도 감각을 전달하는 ‘가는 신경섬유’가 소실된 탓이라는 이론이다. 전체 환자들 중 약 60%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가는 신경섬유가 없어짐에 따라 입이 화끈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게 됐다는 얘기다.

이밖에 우리 몸에서 통증을 조절하는 뇌 속 도파민 호르몬 시스템의 기능 저하, 또는 안면부 감각신경인 삼차신경계의 이상으로 발생한다는 설도 있다. 불타는 입증후군 환자 10명 중 2명꼴로 각각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이런 신경기능 이상은 폐경 이후 호르몬 균형의 변화와 함께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균형 잡힌 식사를 못해 영양결핍 상태에 빠진 사람, 당뇨나 갑상선질환과 같은 대사 장애 질환이 있는 사람, 잘 맞지 않는 틀니에 의해 구강 내 말초신경이 손상된 사람, 노인성 우울증 및 불면증, 불안증 환자 등에게 잘 생긴다.

◇원인규명 후 적절한 약물치료로 대응=불타는 입증후군은 말 그대로 입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을 동반한다. 통증이 가장 심한 부위는 혀다. 그 중에서도 혀끝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이어 입술 볼 입천장 목 등의 순서로 많이 아프다. 틀니가 닿는 부위만 유독 화끈거리는 경우도 있다. 이와 함께 늘 입이 마르거나 쓰고, 입맛이 변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환자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통증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 혀와 구강 점막에선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상을 찾을 수 없으니 가족들마저 환자가 너무 예민해서 겪는 ‘신경성’이라며 방치하기 일쑤이다.

치료는 먼저 원인을 규명하고, 적절한 약물을 찾아 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김 원장은 “환자가 가장 괴롭다고 호소하는 증상을 우선적으로 없애주는 쪽으로 대처하되 우울과 불면 증상이 동반됐을 때는 항우울제 처방도 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상시는 물론 치료 중에도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거나 설탕이 없는 껌을 씹으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식사를 잘 못할 때는 비타민 B군이 풍부한 식품 및 영양제도 보충해줘야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