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의 문학산책] 오즈의 ‘블랙박스’

입력 2014-09-13 03:15

말이 범람하는 이 표현 과잉의 세상에도 말로 되어 나오지 않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 어딘가 늘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 작품은 자주 이런 지대에 관심을 가진다. 마치 한계에 도전을 하듯이,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듯이. 문학의 오묘함이 드러나는 것도 바로 말로 할 수 없는 이 어떤 것의 숨겨진 요철을 드러내며 그 주름을 풀어낼 때가 아닐까 한다. 오즈의 마법사가 할 만한 일을 가끔 문학은 언어의 영역에서 해낸다.

이스라엘의 작가 아모스 오즈의 ‘블랙박스’는 읽는 이에게 여러 겹의 즐거움을 준다. 히브리어로 글을 쓴 1세대 작가답게 오즈의 작품에는 서구 문학에 익숙한 독자들이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생소함의 매력이 있다. 어쩌면 현대 이스라엘의 작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가 중 하나일 텐데도, 아모스 오즈의 작품을 읽고 나면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해, 재탄생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 얼마나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놀랄 때가 있다. 생소함의 원천은 아무도 그 크기와 깊이를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서술과 설명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언어 너머의 긴 역사적 고통에서 기인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통이 작가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작품은 말한다. “고통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라 고운 은백색 달빛에 젖은 숲의 빈터까지 우리가 포복해서 기어가야 할 가시밭길”이라고.

블랙박스는 사고가 일어난 후에 개봉되어 분석된다. 이 작품이 열어 보이는 블랙박스도 마찬가지다. 이혼이라는 파국적 사건이 완결된 7년 후 침묵과 부재를 깨고 일리나가 전 남편인 알렉에게 편지를 쓰면서 블랙박스는 열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사람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졌다. 간접적인 소통의 방식인 편지를 통해 인물들의 이율배반적이며 다층적인 면모가 오롯이 드러난다. 과거에 이들을 사로잡은,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존재의 사건들이 파헤쳐지는 과정에는 현대 이스라엘을 가로지른 전쟁의 흔적 또한 낭자하다. 이스라엘이 단면적으로 접근될 수 없듯이 오즈가 그려내는 이스라엘인들도 그러하다.

그러나 ‘블랙박스’는 파국의 원인을 파헤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이 작품은 한 가정사를 통해 현대 이스라엘의 재건의 소역사를 그려내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적인 전망도 제시한다. 학대받고 아들과 함께 버림받은 피해자인 일리나가, 전 남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문제아 아들 보아스를 구하기 위해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해서만은 아니다. 6일 전쟁의 영웅이기도 했던 알렉은 거대한 부를 유산 받은 상속자이자, 그 사이 미국으로 이민해 세계적인 학자이자 유명 인사가 되었다. 작품에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돈의 거래는 이들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일종의 핑계이자 관계를 유지하는 가냘픈 끈이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블랙박스의 진정한 기능이 드러난다. 말로 되어질 수 없는 응어리진 고통들이 편지를 통해 토로되고 소통되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 단절된 존재 사이에 연민과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버려져 폐허가 된 알렉의 유년의 집을 재건하기 위해 아들 보아스와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임종을 앞둔 알렉과, 임종을 돌보기 위해 일리나가 그들과 합류하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되기에 분명하게 감지된다. 연민어린 돌봄 앞에서 알렉의 악의 기운이 스러지는 이 작품의 말미가 욤 키푸르라 불리는 대속죄일 즈음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물론 우연이 아니다.

오즈의 작품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블랙박스를 열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열려야 해소되고 치유되는 블랙박스 하나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기에 이 초대는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여분으로 누리는 기쁨이 있다. 인간에 관한 성숙한 성찰에서 나온 인간 본성에 관한 관찰들. 성경 말씀이 녹아 있는 인물들의 일상적 삶, 유대 민족 특유의 과장적인 유머와 말 재미는 독자가 현대 이스라엘의 생생한 삶과 친근하게 다가가 축복과 고통의 대명사인 그 나라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최윤(소설가·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