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긴 연휴였던 추석이 지났다. 명절이 오기 전에 여러 기대와 부담을 느끼기도 하지만 명절이 지나고 나서 느끼는 여운도 만만찮다. 명절후증후군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겠다.
의학에서 증후군은 아직 정식 병명이 되지 않은 특정 증상군을 일컫는 용어이다. 몇 가지 증상들이 어떤 하나의 원인에서 나타나거나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것이라는 가정에 의해 증후군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며 일부 증후군은 후에 정식 병명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명절후증후군은 어떤 현상들을 포함하고 있을까.
우선 신체적인 피로가 들어가겠다. 명절 음식이나 차례 성묘 등으로 평소보다 훨씬 높은 육체노동에 종사한 어머니들은 밀려오는 피곤과 무기력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장거리 운전으로 고향에 다녀온 아버지들도 예외가 아니다. 둘째로 허전함이 들어간다. 모처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한 며칠을 보낸 후로는 조용한 상황에서도 뭔가 모르는 마음의 소리가 여전히 마음을 들뜨게 한다. 셋째로 이른바 “또야” 현상이 들어간다. 많이 차려놓았던 음식들을 소진하느라 며칠 밥상에 항상 같은 반찬이 올라오기 때문에 처음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또야?” 하면서 같은 음식을 훨씬 맛없이 먹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과 함께 고려할 것은 명절 중에 보고 들은 여러 가지 기억이다. 명절 전부터 걱정하던 결혼, 취직, 체중 등 이 사람 저 사람이 한 하나하나의 말들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혀 기억된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스쳐 지나며 이미 다 꿰뚫어 파악한 친척들의 옷차림, 액세서리, 선물, 가족간 화목함 등이 며칠간 비교 대상이 되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부인이나 남편에게 하노라면 부부싸움의 단초가 된다. 교묘하게 이런 이야기는 “또야” 현상으로 이어져서 부부싸움을 시리즈로 경험하게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명절후증후군은 친척과 한자리를 했을 경우이다.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경우 혹은 여러 이유로 그들과의 만남을 피했거나 못 가진 경우에도 명절후증후군이 나타난다. 그런데 위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그런 자리는 없었지만 그런 자리가 가상으로 자리하고 그와 연루되는 여러 상념들이 며칠 지속된다. 그 상념 자체가 “또야” 현상으로 이어져서 자꾸 그런 생각에 머무는 자신을 질책하기도 한다.
민족의 명절과 개인의 기념일은 규모의 차이일 뿐 서로 동일하다. 명절은 개개인의 기념일의 의미가 오랜 기간 서로 엉키고 녹아서 응축된 최종 결과물이다. 유대민족은 명절에 특정 성서를 읽는 풍습이 있다. 부림절에 에스더서를 읽는 것이나 유월절에 아가서를 읽는 것이 그 예이다. 부림절에 에스더서를 읽는 것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 부림절이 생겨난 역사적인 이유가 에스더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월절에 아가서를 읽는 것은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역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기념일이 민족의 명절로 세워지는 과정 중에는 그 당시에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중에는 그 관련성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게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나이 지긋한 어른이 그 연관성을 설명해준다면 아주 이상적인 명절이 될 것이다.
명절과 명절후증후군은 유월절에 아가서를 읽는 것만큼이나 낯설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관련성은 충분히 있다. 관련성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직시하는 것이 훨씬 좋다. 명절의 의미가 살아 있지 못하면 명절후증후군은 오히려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지금이라도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최의헌 <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명절후증후군
입력 2014-09-13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