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문명과 야생 바다의 접점에 서는 경험은 이질적이면서도 짜릿했다. 인간 세상의 ‘시끌벅적함’과 대자연의 ‘고즈넉함’ 그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여행, 크루즈 여행만의 매력일 것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크루즈 선사인 스타크루즈의 슈퍼스타 버고(Virgo)호를 타고 남중국해를 돌아본 느낌이다. 크루즈 여행은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떠났던 낭만적인 배낭여행, 어린 자녀 손을 잡고 즐겼던 리조트의 오붓함, 최고급 호텔 편의시설에서 ‘힐링’을 추구하는 호텔 패키지 상품이 녹아 있는 ‘여행의 종합 선물세트’이기도 했다.
바다 한가운데서는 바다만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
홍콩의 빌딩 숲을 지나 빅토리아 항구에 도착하면 13층 높이의 버고호가 마천루를 배경으로 하얀 자태를 뽐내며 정박해 있다. 간단한 승선 절차를 마치고 배에 오른 승객에게 승무원들이 샴페인 등 음료를 한 잔씩 건넨다. 다른 승객들이 승선 절차를 마치고 승무원들이 출항 준비를 마무리하는 동안 갑판을 거닐며 여유롭게 샴페인 잔을 기울여보라는 배려다. 구명조끼 착용법 등을 설명하는 안전교육은 승객은 물론 선원, 편의시설 직원 등 배 안의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20여분간 안전교육이 끝나면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발코니가 있는 객실을 택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탁 트인 바다와 마주하는 발코니 룸이어야 크루즈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는 걸 객실 문을 여는 순간 확신하게 된다. 여장을 풀어놓고 발코니에 놓인 의자에 앉아보면 그때야 홍콩 마천루가 서서히 뒤로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7만5338t의 웅장한 선체가 망망대해로 미끄러져 나가는 걸 객실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형 선박에서 접하는 바다는 해변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짠내 없는 순수한 바닷바람이 다르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훨씬 다채롭다. 한바탕 석양을 즐기고 나면 어둠이 깔리고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진다. 한밤중이 되면 달과 별 무리 속으로 항해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빛 공해가 전혀 없는 밤하늘은 육지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렵다. 발코니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면 배가 만들어내는 하얀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물결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해변의 파도소리와 닮았다.
움직이는 테마파크
바다가 조금 지루해졌다면 뒤돌아 객실 문을 열고 나가보라. 놀거리로 가득한 테마파크가 준비돼 있다. 다만 객실에 비치된 시설 정보를 숙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걸 권한다. 길이 268m, 폭 32m, 13개 층 규모에 객실 수 935개, 최대 수용인원 1870명인 배 안에서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미로처럼 복잡한 선체 내부에서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하기 쉽다. 한국인 직원의 도움을 받아 동선을 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버고호에는 한국인 여직원이 1명씩 상주한다.
13층에는 간이 골프장, 농구장, 조깅 트랙이 구비돼 있지만 별로 인기는 없다. 야외수영장과 야외 스파가 마련된 12층이 이 배의 핵심이다. 수영장 주변으로는 맥주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바가 늘어서 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라이브 연주를 즐기는 커플이 파라솔 아래서 분위기를 잡고,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은 유아용 소형 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기분이 고조된 사람들이 풀장으로 뛰어들고 물미끄럼틀에 몸을 맡긴 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내려오는 왁자지껄한 파티장이다. 조금 아쉬운 건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타이타닉 존’을 개방하지 않는 점이다.
배가 고파지면 길목마다 있는 식당에 가면 된다. 이탈리아, 인도, 일본, 중국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진 10여개의 고급 식당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국적인 요리로 배를 채웠다면 헬스장과 사우나에서 가볍게 몸을 풀어도 되고 선상 마사지를 받아본다면 더없이 좋다. 마사지는 인기가 좋아 최소한 한나절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알찬 면세점과 아담한 사이즈의 카지노도 인상적이다.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식 공연도 필수 코스다. 첫날에는 유쾌한 코미디 쇼다. 웃음 코드가 달라 웃음 포인트를 지나치기도 하지만 ‘홍콩식 개그콘서트’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둘째 날에는 마술쇼, 셋째 날은 서커스가 이어진다. 수준 높은 콘텐츠와 늘씬한 남녀 무희들의 춤사위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도록 한다.
쏠쏠한 재미를 주는 기항지 관광
뜨거운 밤을 보냈더라도 새벽에는 잠시 눈을 떠보길 권한다. 특히 두 번째 기항지인 베트남 하롱베이를 지날 때는 한 폭의 수묵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롱베이는 바다 위에 떠있는 3000여개의 섬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해무에 둘러싸인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몽환적이다. 하롱은 ‘용이 내려온 자리’라는 뜻으로 한자로 ‘하룡(下龍)’으로 쓴다. 작은 보트로 갈아타고 해무가 걷힌 하롱베이의 풍광을 감상한 후 바이짜이 해변의 노천시장을 둘러본다.
기항지(잠시 들르는 항구) 관광은 압축적으로 진행된다. 승객들이 선상의 밤을 즐기는 동안 배는 예정된 기항지로 이동한다. 오전에 항구에 도착하면 승객들은 간단한 짐만 챙겨 하선한다. 여행지를 이동할 때마다 짐을 꾸리고 체크아웃하는 번거로움이 없어 좋다. 짧은 배낭여행처럼 한나절짜리 관광 코스를 즐긴 뒤 숙소인 배로 돌아오면 된다.
첫 기항지인 중국 하이난(海南)섬 싼야(三亞)는 ‘중국의 제주도’다. 중국 대륙 아래 떨어져 있는 섬으로 과거 유배지였지만 현재는 중국의 대표적 관광지다. 당·송 시절에는 수도에서 귀향 오는 데만 3년이 걸리는 악명 높은 곳이었다고 한다. 소동파(蘇東坡)가 말년에 이곳에서 7년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다 도중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루후이터우(鹿回頭) 공원의 전설도 흥미롭다. 사슴을 뒤쫓던 사냥꾼이 활시위를 당기려는 순간 고개를 돌린 사슴이 눈물을 흘리며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고 한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하이난도는 여름보다는 봄·가을이 돌아보기에 좋다. 봄·가을이라도 한국의 여름만큼이나 후텁지근하다.
크루즈 여행의 대미는 홍콩의 화려한 야경이 장식한다. 버고호가 빅토리아 항구에 닻을 내리면 남중국해를 돌아본 지난 3박4일이 마치 반나절처럼 짧게 느껴진다. 홍콩 마천루가 빚어내는 레이저쇼 ‘심포니 오브 나이트’는 이런 아쉬움을 달래준다. 배에서 내려 항구의 오션터미널에 앉아 잠시 기다리면 40여개의 고층 빌딩이 빛의 향연으로 강렬한 피날레를 선사한다.
◇여행정보=버고호는 매주 토요일 오후 홍콩에서 출항한다. 출항 하루 전 홍콩에 도착해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1888년부터 케이블 철도 방식으로 운행된 피크 트램(노면전차)을 타고 홍콩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간다. 홍콩의 명물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도 빼놓을 수 없다. 길이 800m에 달하는 에스컬레이터로 세계에서 가장 길며 국내에서는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해 알려졌다.
크루즈 가격은 객실 유형에 따라 159만∼229만원이다. 하나투어, 레드캡투어, 노랑풍선, 한진관광에서 이 상품을 판매한다. 크루즈에서는 갈라 파티에서 입을 세미 정장을 준비하는 게 좋다. 선내에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료는 24시간에 45홍콩달러(약 6500원) 정도면 된다. 선내에서 환전이 가능하며, 별도의 팁은 주지 않아도 된다. 스타크루즈 한국사무소(02-733-9033).
홍콩·싼야·하롱베이=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남중국해 크루즈 여행… 낭만이 출렁∼ 힐링이 넘실∼
입력 2014-09-18 0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