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더 은혜롭게] 명절에 듣기 싫은 말… 말… 말

입력 2014-09-06 19:18
"다가오는 추석 명절엔 천국의 소리를 듣고 싶어요."

4일 오전 7시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극동방송 6층 스튜디오. '좋은 아침입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송옥석(35) PD의 낭랑한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아졌다. 송 PD가 말하는 천국의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송 PD는 "천국의 소리는 불협화음이 아닌 화목한 웃음이 함께 나오는 소리, 아름다운 말로 주고받는 사랑과 화합의 소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만들어낼 천상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의 주제는 ‘명절 우울증을 뛰어넘는 행복대화법’. 극동방송 애청자 1000여명이 스마트폰 카카오톡(카톡)을 통해 여론조사 투표방식으로 실시간으로 참여했다. 송 PD 초청으로 기자와 한국부부행복 코칭센터 황현호(49) 소장이 함께 참석했다. 황 소장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 우울해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한다”면서 “막상 명절이 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서로가 상처주거나 실수하는 바람에 관계가 더 나빠지고 명절이 끝난 다음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먼저 ‘추석 때 가장 부담되고 듣기 싫은 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는 일 어때? 벌이는 괜찮나?’라는 대답이 440명(37.47%)으로 1위에 올랐다. 다음으로 ‘기타’(자녀가 어느 대학 다녀?, 누구는 용돈을 얼마 받았다 등)가 252명(21.47%)으로 2위, ‘살쪄 보인다’ 등 외모에 대한 얘기가 224명(19.08%), ‘누구는 대기업 갔다더라, 승진했다더라’ 168명(14.31%) 순으로 응답했다. 마지막으로 ‘내년엔 결혼하겠니? 기도하고 있어∼’에 90명(7.67%)이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질문에 1174명이 응답했다.

참여자 중 50대 초반의 S집사는 “벌이는 괜찮나, 연봉이 1억(億)은 넘지? 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답했다. ‘기타’를 선택한 청취자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제 딸이 변변한 대학을 못 가고 편입 공부하는 입장이라 ‘어느 대학 다녀?’라는 말에 상처를 받습니다. 어머님이 다른 집 자식들은 이런 거, 저런 거 해왔다더라 하며 비교하실 때가 제일 속상해요.”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대개 삼촌이나 고모 등 대화를 독점하는 사람이 꼭 있다. 이들은 평소에 나서고 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아픈 곳’을 건드려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추석 때 가족들과 대화하면서 고쳐야 할 태도는?’에 대한 답변으로 397명(39.19%)이 ‘내 입장에서만 말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이어 ‘훈수 두는 것(이렇게 해라∼충고)’에 공감한 이는 185명(18.26%)으로 2위, ‘딴짓하면서 대화하는 것’ 147명(14.51%), ‘질책하는 것(이미 지난 것 혼내기)’ 140명(13.82명), ‘없다’ 86명(8.49%), ‘기타’ 58명(5.73%) 순으로 응답했다. 이 질문엔 1013명이 응답했다.

청취자 중 40대 중반 K집사는 주변에서 추석의 ‘추’, 명절의 ‘명’ 자만 나와도 머리가 벌써부터 지끈거린다고 말했다. 명절 때만 되면 식구들 뒤치다꺼리에 지치거나 친지와의 긴장관계, 가사일에 관심 없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는 벌써부터 ‘명절 증후군’이 두렵다고 말했다.

명절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저마다 삶의 전쟁터에서 힘든 싸움을 끝내고 한자리에 모인다. 이때 서로 상처를 보듬고 감싸주는 것이 명절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이다. 황 소장은 “묵은 감정을 미숙하게 표현해 감정의 앙금을 만드는 수가 많다며 가족 간에 ‘감사해요’ ‘미안해요’ ‘멋져요’ ‘축하해요’ ‘괜찮아요’ 등의 칭찬과 격려의 말을 많이 나눌 것”을 제의했다. 음식을 장만하느라 애쓴 아내에게 “정말 수고했어” “역시 당신이야”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큰 의지가 되어주는지 몰라” “내가 뭐 도와줄 일 없어” 등의 말 한마디가 명절증후군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

한편 2014년은 ‘세월호 참사’ 등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지만 아직도 달력은 4장이나 남았다.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는 가족관계 회복을 위해 이번 명절에 하루쯤 ‘가족 마루 캠핑’을 가져볼 것을 제안했다. 자녀와 함께 발장난을 치며 두런두런 추억도 되살리고 릴레이로 버킷 리스트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고. 감사로 마무리하면 금상첨화다. 한 해 동안 감사거리 10가지를 고백하고 지명하면 그 사람이 또 10가지를 이야기하고 밤새 감사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함께 울고 웃는 사랑의 소리가 있는 곳, 고향이야말로 작은 천국이 아닐까.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