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선거법 무죄·국정원법 유죄] 警·檢·국정원·정치권 뒤흔든 ‘댓글 악몽’

입력 2014-09-12 04:25

국가정보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 사건은 주요 권력기관인 검찰과 국가정보원, 경찰 조직 모두에 치명상을 남긴 채 1심 재판이 마무리됐다. 정치권은 대선 직후부터 대선 정당성 시비를 벌이며 박근혜정부 1년을 허송세월했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검찰은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 수사팀장이 이번 국정원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려 옷을 벗거나 좌천당했다. 논란은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에 꾸려진 특별수사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면서 시작됐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수사팀 의견을 지지하면서 황 장관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수사팀은 지난해 6월 14일 원 전 원장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채 전 총장은 3개월 뒤 혼외자 논란이 불거져 자진 사퇴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채 전 총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로 '찍어내기'를 당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원 전 원장 재판은 수사팀이 지난해 10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트위터 작성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하면서 전환점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원 전 원장이 트위터 글 121만여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를 추가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은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지휘 라인이 공소장 변경 신청을 늦추라는 식으로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파문이 커지자 대검은 감찰에 나섰다. 이후 윤 팀장은 이어 징계를 받고 팀장직에서 물러났고, 조 전 지검장은 사퇴했다.

국정원은 원장과 3차장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국정원이 원장 지시에 따라 정치에 개입해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유죄로 판단되면서 조직 전체가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었다는 평가다. 세월호 정국에서 수그러들었던 국정원 개혁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 개입을 최소화하는 내용의 자체 개혁안을 마련한 상태다.

경찰 조직도 매끄럽지 못한 대응으로 국민 불신을 자초했다. 경찰은 지난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직원이 불법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과 함께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오피스텔로 출동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대선 투표 사흘 전인 12월 16일 오후 11시쯤 '대선 개입 게시글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이어진 경찰 수사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 수차례 국내 정치 관련 게시글을 올린 정황이 드러났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해 4월 "김용판 전 서울청장이 수사에 부당한 압력을 넣어 초기 수사가 미진했다"고 폭로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전 청장은 원 전 원장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1·2심에서 잇달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1심은 당시 경찰의 중간 수사 발표에 대해 "시기와 내용면에서 아쉬웠다"고 평했다. 권 전 과장은 경찰에 사표를 낸 뒤 지난 재·보궐 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검찰은 지난 6월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 등을 국정원 여직원을 오피스텔에 감금한 혐의로 기소했다. 김 의원 등에 대한 1심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