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었던 이모씨는 지난 6월 퇴직 후 ‘20만4500원’이 찍힌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았다. 이씨가 공무원으로 일할 땐 ‘직장가입자’여서 많아도 ‘16만원’을 넘지 않았다. 건보료가 오른 건 ‘지역가입자’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연간 연금소득 3600만원, 주택·토지 과표 약 1억5000만원, 자동차 2대 등에 보험료가 매겨지면서 퇴직 후 보험료를 더 내게 됐다. 건보료를 덜 낼 방법을 찾던 이씨는 월급 180만원을 받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했다. 이후 이씨가 내는 건보료는 ‘0원’이다.
이씨 사례는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문제점을 한눈에 보여준다. 직장가입자는 소득에만,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에 건보료를 매기다 보니 퇴직 후 거꾸로 보험료가 오르는 사례가 빈번했다. 매달 연금 300만원을 받는 아버지가 월급 180만원인 자녀의 피부양자가 돼 건보료를 전혀 안 내는 상황도 생긴다. 이처럼 형평성을 담보하지 못했던 건보료 부과체계를 앞으로 ‘소득 중심 부과’로 바꿔야 한다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최종 의견이 나왔다.
기획단은 11일 “최종적으로 모든 소득에 대해 건보료를 매기도록 부과체계를 개선하되 종합과세소득부터 부과하는 단계적 접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말 기획단의 최종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공청회 등 여론수렴 절차를 거친 뒤 올해 안에 정부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고소득 직장가입자 건보료 인상, 종합소득세 내는 피부양자 건보료 부과=기획단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가능한 부과체계 개선안으로 ‘종합과세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근로소득, 사업소득, 2000만원 초과 금융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퇴직·양도소득과 상속·증여소득은 일단 뺐다.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 일용근로소득도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되면 종합소득세를 내는 고소득 직장가입자의 건보료가 오른다. 종합소득세를 내는 피부양자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자녀와 별도로 건보료를 내야 한다. 다만 종합소득세를 내는 피부양자를 무조건 지역가입자로 전환시킬 것인지는 의견이 갈렸다. 기존에 있는 ‘피부양자의 지역가입자 전환 기준’을 좀더 확대하는 선에서 개정하자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최저보험료’ 부과=연소득 500만원 이하의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부과됐던 성·연령 보험료는 폐지해야 한다는 최종안이 나왔다. 대신 ‘최저보험료’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최저보험료는 보험료율을 올해보다 낮춘 5.89%로 적용할 경우 월 1만6480원이 될 전망이다. 기획단은 최저보험료도 내기 힘든 저소득 취약계층에는 보험료를 더 줄여주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보험료를 매기는 방법도 지금처럼 소득·재산을 점수화하는 방식 대신 ‘기초공제 제도’를 도입, 고액 재산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올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초공제액을 5000만원 이하로 잡으면 지역가입자의 61%가, 1억원 이하면 약 77%가 최저보험료만 내면 된다. 기초공제액보다 많은 재산이 있는 경우 재산이 오를 때마다 일정 비율로 보험료가 오르는 방식이다. 자동차에 대한 건보료 부과는 폐지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최종 목표는 ‘소득 중심 단일 부과체계’=기획단이 제시한 최종 목표는 모든 가입자에게 모든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매기는 ‘소득 중심의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획단 위원은 “부과체계 개선은 형평성 제고를 위한 것”이라며 “형평성을 가지려면 소득 중심으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게 기획단 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직장·지역 구분이 없어지고 퇴직·양도·상속·증여소득과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일용근로소득 등에도 보험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당장 이런 식으로 부과체계를 바꾸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일단 건강보험법 금융실명제법 국세기본법 등을 고쳐야 한다. 국회를 거쳐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또 현재 63% 정도인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을 더 높여야 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2000만원 넘는 이자·연금소득에도 건보료 매긴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 최종 의견 살펴보니
입력 2014-09-12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