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망각하고… 카드깡업자에 ‘상납’ 받은 세무공무원들

입력 2014-09-12 05:25 수정 2014-09-12 15:09
‘카드깡’(신용카드 위장거래)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전·현직 세무공무원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카드깡 업자에게 단속 정보를 흘리거나 수사기관 고발 조치를 무마해주는 등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매달 상납금 등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금천세무서에서 근무하던 7급 세무공무원 최모(40)씨는 2011년 3월 카드깡 총책 정모(44)씨로부터 단속을 무마해주면 사례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최씨는 국세청에서 위장가맹점 단속계획 공문서가 내려올 때마다 이를 정씨에게 팩스로 보내 단속 정보를 넘겨줬다. 위장가맹점 고발에 필요한 ‘거래사실확인서’도 실제 카드결제자가 아닌 정씨 일당에게 건네 위조토록 했다. 정씨의 위장가맹점이 단속되면 최씨가 직접 무마에 나섰다. 최씨는 자신이 단속 업무를 처리하겠다며 국세청 내부 결재를 받은 뒤 실제 고발은 하지 않은 채 관련 서류를 국세청 서고에 방치했다. 최씨는 단속 정보 유출 등의 대가로 매달 300만원을, 고발하지 않는 대가로는 건당 100만원을 받는 등 모두 815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러한 범행은 국세청 조기경보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매일 전국 카드가맹점 매출 정보를 분석하는 이 시스템은 카드깡 의심업소를 골라내는 데 효과적이지만 최종 위장가맹점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세적(稅籍·납세자 대장) 담당자의 현장 실사가 필수적이다. 이들의 권한이 막강해지면서 범죄자들의 집중적인 로비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 최씨를 비롯해 금천·서초세무서 등에서 카드사 관리·감독 업무를 하던 전·현직 세무공무원 3명도 정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정씨의 위장 가맹점이 의심업소로 걸러지더라도 실사 결과를 ‘정상’이라고 입력처리한 대가로 각각 2400만원에서 8150만원을 받았다. 또 전·현직 세무공무원 4명도 위장가맹점을 고발하지 않거나 무단으로 세무정보를 조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씨 일당은 유흥주점에 부과되는 최대 38%의 국세를 탈루하기 위해 2010년 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노숙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 170명의 명의로 은행계좌, 사업자등록증, 영업허가증 등을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이용해 서울·경기 지역 유흥주점 등에 위장가맹점 1998개를 개설하고 1582억원의 매출에 대해 200억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이들이 탈루한 세금은 최대 600여억원으로 추산된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최씨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또 다른 최모(40)씨 등 전·현직 세무공무원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정씨 등 조직원 20명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