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선거법 무죄·국정원법 유죄] ‘모르쇠’ 국정원

입력 2014-09-12 05:47
국가정보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사건에 연루돼 법정 증인으로 섰던 국정원 직원들은 재판 초기부터 끝까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감싸기에 나서 빈축을 샀다. 이들은 검찰 조사 당시 구체적으로 진술했던 심리전단 활동에 대해 법정에서 번복하거나 “기억력이 좋지 않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3팀 여직원 황모씨는 지난해 11월 열린 원 전 원장 공판에서 “검찰 조사 때 긴장해서 답이 꼬였다. 조사를 빨리 끝내고 싶어서 제대로 진술을 못했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앞서 황씨는 검찰 조사에서 “원 전 원장의 지시가 차장, 국장, 과장 회의를 거쳐 구체화돼 일선 직원에게 전달된다”며 국정원 대선 개입 활동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정황을 진술했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잘 알지 못하고 내 생각을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에서 트위터 활동을 한 이모씨는 지난해 12월 법정에서 “트윗 게시글 작성은 상부 지시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슈 및 논지가 전달된 경위는 모른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검찰 신문 당시 “이슈 및 논지를 내부 이메일로 전달받아 트위터 활동에 반영했다”고 진술했으나, 법정에서는 “체포된 후 너무 정신이 없어 그렇게 말했다”고 진술을 바꿨다. 이씨는 트위터 계정 40여개로 박근혜 후보 공식 트위터 계정 글을 전파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박 후보 공식 계정인 줄 알았다면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모씨는 지난 3월 공판에 출석해 “검찰 진술은 착각이었다. 내가 원래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고 답했다. 다음날 증인으로 출석한 또 다른 국정원 직원은 “검찰 조사 때 덩치가 큰 팀장(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며 “검사만 보면 사지가 떨려 지금 검사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해 법정에서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김씨는 자신이 사용했던 휴대전화 번호도 모른다고 답해 재판장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의 모르쇠 전략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사항이 지휘체계를 거쳐 직원들의 국정원법 위반 활동에 반영된 점을 인정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