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2000원 인상] 가격 오르면 흡연율 뚝… 만국 공통 ‘최고의 금연정책’

입력 2014-09-12 04:35

우리나라 흡연율은 크게 떨어진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2002년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폐암 사망과 2004년 담뱃값 500원 인상 때가 그랬다. 2001년 60%를 넘었던 성인 남성 흡연율은 '이주일 쇼크'에 50%대로 낮아진 뒤 '500원 인상의 충격'에 다시 40%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 담뱃값은 아직도 2500원이고 흡연율은 여전히 43.7%(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기준)다.

정부가 담뱃값을 한꺼번에 2000원이나 올리려는 최대 명분은 이 흡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OECD 평균치의 2배에 달한다. 연간 5만8000명이 흡연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 반면 담뱃값은 7000원 선인 국제 평균치의 3분의 1 수준이다. 2004년 이후 물가상승률만 감안해도 지금 3300원은 돼 있어야 한다. 사실상 10년째 계속 담뱃값이 낮아져온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담뱃세를 50% 올릴 경우 3년 안에 세계 4900만명이 담배를 끊어 1100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담뱃값 인상이 가장 효과적 금연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4년 담뱃값 500원 인상 당시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은 12% 포인트 낮아졌다(2004년 57.8%→2006년 45.9%). 특히 구매력이 약한 청소년 흡연율은 6개월 만에 28.6%나 낮아졌다.

'담뱃값 효과'는 외국에서도 여러 차례 입증됐다. 미국은 1980년대 초부터 1992년까지 담뱃값이 급속히 상승하자 성인과 학생 흡연율이 각각 절반으로 줄었다. 캐나다도 1980년 담뱃세가 대폭 인상되면서 40%를 웃돌던 흡연율이 20%대로 급감했다.

특히 영국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담뱃값을 200%나 인상했고 '물가연동제'를 적용했다. 이 20년간 영국의 담배 판매량은 51%가 줄었고 성인 흡연율은 20%까지 떨어졌다.

정부는 영국처럼 물가연동제까지 도입하는 '대폭적이고 지속적인' 담뱃값 인상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 배경엔 최근 보건복지부 설문조사에서 "담뱃값이 4500원 되면 담배를 끊겠다"는 흡연자가 32.3%나 될 정도로 강력한 '기대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민건강증진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내년 1월 1일부터 인상안을 적용할 방침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9월 중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며 "물가연동제 방식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 2∼3년 동안 물가가 5% 오르면 이를 담뱃값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효과적인 금연정책이 지난 10년간 사용되지 못한 건 흡연자 여론의 저항과 이를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 대응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담뱃값 인상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가격 이외의 금연정책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는 '담배가격 정책과 흡연율 분석' 논문에서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가격정책(2000원 인상)만 사용하거나 비가격정책만 사용할 경우 성인 남성 흡연율은 목표치인 29%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담뱃값을 2000원 올리는 동시에 다른 금연정책까지 모두 동원할 경우를 전제로 조 교수가 도출한 2020년 추정 흡연율은 27%였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