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딸 태희가 연애를 했을 때 나도 덩달아 연애를 하는 것 같았다. 만나는 남자가 있다고 했을 때 나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그 남자가 어른거렸다. 버스를 타고 거리를 지나면 저렇게 생겼을까. 그리고 태희는 결혼했고 곧 첫아들을 얻었다. 나는 세상을 얻은 것 같았고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아기 옆에서 떠날 줄 몰랐고 외국여행 가는 것도 미루곤 했었다.
안겨 있던 아이가 혼자 기고 혼자 일어섰다. 태희는 늘 앞서 가고 싶었다. “언제 걸을 수 있을까?” 그 아이는 걸었고 태희의 소망은 다시 앞서 가기 시작했다. “언제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태희는 아이를 얼른 어른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이 순간을 즐겨라. 이 순간은 곧 지나간다고 나는 타일렀다. 지금 네 앞에 있는 아이가 곧 천국이라고 네 앞에 서 있는 아기가 너의 미래라고 나는 늘 태희의 안달을 잠재우려고 노력했었다. 어렵고 힘들지만 이 아이는 결코 다시 이 순간을 가질 수 없다.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아껴라.
그러나 태희는 지금이란 시간적 공간은 늘 힘들어서 조금 시간을 당겨오면 조금 편해질 것처럼 생각이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애인 첫 손주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모든 시간은 당기지 않아도 이렇게 오고 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만 풀려나면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라는 그 생각이 과연 내 딸에게 웃음을 줄 것인가 나는 장담할 수 없다.
내 딸 태희의 고민은 달라졌다. 놀랍게도 어느새 군입대 아들의 대학 졸업 후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의 엄마들은 그래도 품안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지는 않을까.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간다. 빠르고 느린 것은 사람마다의 느낌뿐인 것이다. 곧 태희의 아들은 시간줄을 팍팍 잡아당기지 않아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내 딸 태희가 이제는 좀 시간이 슬슬 가도 좋다고 말해도 시간은 절대로 태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곧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가고 여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내 딸 태희는 나같이 손주를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내 사랑하는 딸 태희에게 지금 고단하고 지치더라도 지금 오늘의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고통을 즐기며 가장 어려운 순간에 지금 이 시간을 감사하다고 기도하는 지혜로운 여성이 되었으면 한다. 얘야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단다
입력 2014-09-12 0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