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도시에 있는 큰집은 명절 때면 이른 새벽부터 4대 조상까지 4번의 차례를 지낸다. 매번 차례 때마다 탕과 산적 등 음식을 새것으로 바꿔 차례상에 올린다. 송편 빚고 전 부치고 음식 준비는 전날 온 가족이 동원돼도 밤 12시가 돼서야 끝나기 일쑤다. 80세 넘으신 큰아버지까지 지금은 송편 빚거나 만두 만드는 데 힘을 보태지만 새언니는 허리 한번 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명절 때면 “얼굴 못 본 니네 조상 음식까지 내가 하리/ 나 자랄 때 니 집에서 보태준 거 하나 있니/ 며느린가 일꾼인가 이럴려고 시집왔나/…(중략) 남편놈은 쳐누어서 TV 보며 낄낄대네/ 뒤통수를 까고 싶네…”라는 ‘며느리 넋두리’가 공감을 얻는 것 아닌가 싶다. 오죽했으면 “명절 되면 죽고 싶네/ 일주일만 죽고 싶네/ 10년 동안 이 짓 했네/ 수십 년은 더 남았네”라는 ‘며느리 시’가 유행할까.
“음식은 내 손으로 안 만들어야 맛있더라.”(20년차 아줌마) “이번 추석은 수시 원서 접수와 함께 보내지만 차례 두 번 지내고 할 거 다한다.”(고3 딸 둔 주부) “난 언젠가부터 모든 명절이 싫더라. 그냥 평일이 젤 좋아.” “아마 그 언젠가는 결혼 후부터일걸? 남학우들은 이해 못할 거야.” 인터넷 대학동창 ‘밴드’에 올라온 우울한 추석 풍경이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거나 콘도에 놀러가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늘고 있다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상당수 며느리들에게는 남의 얘기인가 보다. 추석 다음 날인 9일과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 백화점과 미용실이 크게 붐볐다고 한다. 명절 스트레스를 쇼핑과 헤어스타일 변화로 풀려는 40∼50대 여성 고객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연휴 마지막 날 미루고 미뤘던 파마를 하기 위해 동네 미용실을 찾았더니 거기도 주부들이 만원이었다. 대표적인 명절 후유증인 손목터널 증후군이 남성 환자보다 여성 환자에게서 4배 더 많이 발병한다거나 명절증후군을 극복하는 데는 현금이 최고라는 한 인터넷업체의 설문조사 결과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정을 나눠야 할 명절이 어쩌다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날이 돼버렸을까. 아들 3형제를 둔 시가는 한두 가지씩 음식을 만들어 추석 당일 모인다. 미국 등에서 흔한 파트럭 파티(Potluck Party)식이다. 추석 전날 장보기와 음식 만들기는 남편과 함께한다. 먹는 것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과 넉넉한 마음도 나누는 추석이라면 모두가 행복한 명절이 되고 명절증후군이란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한마당-이명희] 파트럭 추석
입력 2014-09-12 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