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대통령도 힘 보태라

입력 2014-09-12 03:51

짧지 않은 추석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명절증후군 탓만은 아니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닌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역설의 현실로 돌아오기가 싫기 때문이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여야는 연휴가 끝나자마자 추석 민심을 두고 서로 ‘내 편’이라고 또다시 말싸움을 시작했다. 추석 민심은 분명 “그만 싸우라”는 것인데 말이다.

세월호만 가라앉은 게 아니었다. 정치 리더십도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온 나라가 세월호에 빠져 허우적댄 지 다섯 달이 돼가도록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리더십은 소통과 존중에서 나오는데 이를 실천하는 정치 리더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크다. 국회의장은 꽉 막힌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중재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새누리당의 거부로 체면을 구겼다. 여당이 써준 각본대로 사회나 보는 국회의장의 그런 모습이 주제넘게 보였던 모양이다.

시나브로 세월호 피로감이 심해지고 있다.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의도적으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청운동 주민센터 앞마당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들도 고통스럽지만 지켜보는 국민들도 힘들다. 이 불행한 사태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대국민 담화에서 “(세월호 참사)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에서 세월호는 사라졌다. 참사 직후 진도 팽목항에서,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을 보듬으며 아픔과 슬픔을 함께했던 대통령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국가 대개조’ 구호는 어느새 ‘경제’로 대체됐다. 박 대통령이 연휴 전과 연휴 중 건넨 추석 덕담에도 세월호는 없었다. 그 빈칸은 ‘경제활성화’로 채워졌다.

대통령 입장에선 눈물의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는 세월호 유족이 야속할 수 있다. 대통령의 손길은 뿌리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지했던 이들은 과연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는 회의가 들었을 수도 있다.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유족들 얘기에 귀 기울였고, 책임자 처벌은 물론 사고 재발 방지 약속 등 할 일을 다 했는데 박수는 치지 못할망정 농성으로 대거리를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유족들의 이 같은 태도 때문에 세월호 정국의 국외자가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이 부쩍 강조하는 국정 어젠다가 경제활성화와 규제개혁이다. 경제활성화와 규제개혁은 국회에서 관련법 제·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구호로 끝나기 쉽다. 하지만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국정 어젠다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국회가 정상화돼야 하고, 국회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특별법 문제가 풀려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특별법 제정은 국회에서 할 일”이라며 여의도 정치와 담을 쌓고 있다.

“대통령과 의회(국회)는 독립적이면서도 밀접하게 얽혀 있어서 양쪽이 함께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어느 쪽도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E 뉴스타트의 저서 ‘대통령의 권력’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렇다. 대통령과 국회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물과 기름이니 통치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게 된 것이다.

국정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꼬인 세월호 정국의 실타래를 풀 궁극의 책임 역시 대통령 몫이다. 유족 설득에 청와대도 적극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움직이는 게 부담스러우면 참모들을 활용하면 된다. 청와대가 유족들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오바마케어’ 통과를 위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소통하고 또 소통했다. 망가짐도 마다하지 않았다. 눈물이 진심이라면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