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530만원에 판권 샀더니 요즘은 10억 ‘복권’

입력 2014-09-12 03:11
‘21세기 자본’은 지난해 저자 토마 피케티의 고국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됐다. 당시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올 초 미국에서 영어판이 나오면서 갑자기 세계적인 ‘피케티 현상’이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출신으로 한국어판의 해제를 쓴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예전에 케인스의 책도 그랬다며 “그래서 경제학계에서는 책을 쓰려면 모름지기 영어로 써야 한다는 농담이 생겼다”고 말했다.

‘피케티 현상’ 이후 ‘21세기 자본’의 판권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출판계에 따르면, 요즘 이 책의 판권을 사려면 10억원을 줘도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출판사 글항아리는 이 물건을 단돈 4000유로(약 530만원)에 구입했다. 10억원짜리 ‘판권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글항아리는 영어판이 나오기 전인 지난해 10월 판권 계약을 맺었다. 해외서적 저작권 대리업체에서 불어판을 들고 국내 여러 출판사에 출판 제안을 했는데, 글항아리 한 군데만 응했다. 프랑스 경제서가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데다 책이 너무 두꺼웠다. 그러나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잘 팔리지는 않겠지만 자본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판권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강 대표는 “요즘이라면 우리 같은 작은 출판사는 판권 경쟁에 뛰어들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아마도 부르는 게 값이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계열사인 글항아리는 지난해 20억원 매출에 1억원 남짓 수익을 냈다. 출판사는 ‘21세기 자본’ 판매가 5만부를 넘기는 순간부터 이익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판권에 ‘대박’이 있으면 ‘쪽박’도 있다. 이 분야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유명하다. 지난해 7월 국내에 출간된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경우, 선인세가 15억 원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은 43만부나 팔렸지만 결국 출판사에 적자를 안겼다. 그러나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하루키 작품의 선인세는 1000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하루키 책은 ‘복권’으로 불렸다.

김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