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화제작 ‘21세기 자본’(글항아리)이 12일 서점에 배포됐다. 실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생겨나면서 이 책을 둘러싼 얘기는 본격화할 전망이다.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등하는 불만 속에서 이 책이 사회적 토론을 위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책은 메시지를 떠나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저작으로 인정받는다. 하나는 분배 문제를 경제학의 중심 논의로 되돌려 놓았다는 점이다. 저자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부의 분배를 소홀히 했다”며 “돈과 그 규모,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그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는 부의 분배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가장 기초적이고 신뢰할만한 자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피케티는 “우리가 18세기 이후 나타난 자본-노동 간 분배의 변화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묻고 “부의 분배에 관한 지적·정치적 토론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을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비판한다.
43세의 소장학자 피케티는 소득에서 자본이 가져가는 몫은 얼마나 되는가, 자본-노동 간의 공정한 분배란 무엇일까, 불평등은 어디까지 용인돼야 하는가, 이런 고전적인 질문들을 가지고 동료들과 함께 15년간 연구를 해왔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 미국, 일본 등 20여개국의 300년에 걸친 장기 통계를 가지고 분석을 했고, 몇 가지 신뢰할만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첫째, 불평등은 심해졌다. 먼저, 191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국민소득의 계층 구조에서 상위 10%의 몫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자. 1910년대와 1920년대에 국민소득의 45∼50%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1940년대 말까지 30∼35%로 줄었고, 1950년에서 1970년까지 바로 그 수준에서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그 후 1980년대에는 불평등이 크게 증가해 2010년까지 상위 10%의 몫은 국민소득의 45∼50%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일본의 경우, 자본/소득 비율(연간 국민소득에 대한 특정 시점의 자본총량 비율)은 1910∼1930년에 600∼700%로 치솟았다가 1950년대에 200∼300%로 떨어진 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다시 600∼700%에 가까운 수준으로 반등했다. 잘 사는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 세계 자본/소득 비율은 500%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며, 이대로 두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700%에 도달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자본/소득 비율이 중요한 이유는 그 추이를 통해 소득의 증가에 대한 자본의 증가 비율을 보여주면서 자본의 집중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둘째, 양극화의 근본 요인은 ‘r>g’, 즉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r은 역사적으로 거의 4∼5% 수준을 유지한 반면, g는 20세기 중반 3%를 달성한 시기를 예외로 하면 대체로 그보다 훨씬 낮다는 것이 피케티의 분석이다. 그는 21세기에는 g가 1.5%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셋째, 상속재산은 그래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배당금이나 이자, 임대료 등 자본에서 나오는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노동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이런 불평등은 저성장 사회에서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며 ‘세습자본주의’를 경고한다.
‘21세기 자본’은 올 초 미국에서 출간된 후 세계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고, 이 토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것이야말로 피케티가 책을 낸 목적이기도 하다. 피케티는 서문에서 “민주적인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그 토론이 좋은 질문들에 집중되도록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 책은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한 세계적 토론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신뢰할만한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토론의 수준을 높여 놓았다. 또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책을 냄으로써 토론의 참가자들을 확장시켰고, 그로 인해 문제의 답을 찾을 가능성을 키워놓았다.
피케티는 불평등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입장에 서지 않음으로써 고질적인 좌우논쟁에 포획되지 않는다. 그는 ‘불평등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고쳐 제기함으로써 싸움이 아니라 토론을 유도한다.
피케티는 책 후반부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탐색한다. 범세계적 누진세 도입, 사회적 국가의 건설, 글로벌 자본세 등이다. 이 모두가 함께 토론해야 할 문제들이다. 토론이 무슨 소용이냐고?
“소득과 부의 역사는 언제나 대단히 정치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사회가 불평등을 어떻게 보느냐에, 그리고 그것들을 측정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정책과 제도를 채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불평등,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토론에 초대합니다
입력 2014-09-12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