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등단한 이재무 시인의 열 번째 시집. 시인은 첫 시집 ‘섣달그믐’(1987)부터 이번 시집까지 한국 서정시의 중심에 서서 각박한 현실을 인간적인 사랑으로 끌어안아왔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인생의 허무와 그 안에 담긴 진실 등을 인상 깊게 다룬다.
‘어항 속 물을/ 물로 씻어내듯이/ 슬픔을 슬픔으로/ 문질러 닦는다/ 슬픔은 생활의 아버지/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고개 조아려/ 지혜를 경청한다’(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신발장에 정리된 헌 신발은 가족의 생계를 실어 나르던 폐선으로 비유된다. ‘신발장 속 다 해진 신발들 나란히 누워 있다(중략)/ 저 신발들 번갈아, 누추한 가장 신고/ 세상 바다에 나가/ 위태롭게 출렁, 출렁대면서/ 비린 양식 싣고 와 어린 자식들 허기진 배 채워주었다/ 밑창 닳고 축 나간,/ 옆구리 움푹 파인 줄 선명한,/ 두 귀 닫고 깜깜 적막에 든,/ 들여다볼 적마다 뭉클해지는 저것들/ 살붙이인 양 여태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폐선들).
시인은 자신의 시들이 주로 길 위에서 구한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 강의를 다니며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시상 역시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매번 시를 쓸 때마다 처음인 듯 낯설고 당혹스럽기만 하다”는 시인은 “이제는 그것 때문에 어떤 강박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손에 잡히는 책]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담아
입력 2014-09-12 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