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임상시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입력 2014-09-16 03:09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에게 미국 보건당국은 전임상시험 단계인 ‘지맵(ZMapp)’을 임상시험 없이 투여해 2명의 미국인이 극적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지맵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만 진행되고 있어 인간에게 투약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용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1000명이 넘는 아프리카인이 숨질 때까지도 정식 임상시험을 통한 투약은 계속 유보돼 왔다. 승인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이례적으로 최단시간 내에 전임상시험 중인 약물을 인간에게 투약하도록 허용하면서 임상시험 절차에 대한 여러 의문이 생기게 된다. 즉 ‘효과가 좋은 약을 그동안은 개발하지 않고 있다가 미국인이 걸리자 개발을 시작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많이 걸리는 병들은 치료제를 개발해 봐야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국적제약사가 약 개발을 미뤄 오고 있었다.’ 등 무수한 추측과 의혹이 일어났다. 하지만 암환자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경우처럼 치사율이 높은 질환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의 개발 과정에서 위의 의혹들의 대부분은 맞지 않다. 이보다는 ‘안정성, 유효성 검증이 우선인가, 인도적 차원에서 일부 절차를 생략하고 빨리 약물을 공급해 생명을 구제함이 우선인가’라는 논의가 훨씬 더 중요할 것 같다.

2000년대 초 글리벡 공급 원년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만성골수성백혈병과 다른 고형암 환자들이 글리벡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심지어 의료진들조차도 말기 암환자에게는 한 번 써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약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당시 글리벡 공급 심의위원회의 철저한 의학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 적응증 이외의 질환에 불필요하게 약물이 공급되는 것을 막아 부작용 발생 등의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모든 말기 암환자들에게 제한 없이 약물 공급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공급 초기에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 ‘서울이 전 세계 의약품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도시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에 대해,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시행되고 있는 것은 다국적 제약사가 아직 안전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의약품의 임상시험을 미국, 유럽 대신 만만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서 우선 시행해 본 후, 안전하면 서양인을 대상으로 나중에 투약을 한다는 음모론이 한동안 SNS를 통해 유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국가별 임상시험 순위(미국 39.4%, 독일 5.9%, 일본 4.9%, 프랑스 4.5%, 영국 3.2%, 중국 2.5%, 한국 1.96%)를 들여다보면 잘못된 해석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서울이 초대형 병원과 인구 밀집도가 높고 국제임상시험을 유치할 우수한 암 연구자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의 뉴욕과 휴스톤을 앞지르고 2년 연속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새로운 약물의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서양 환자에게는 약물 투여를 미뤄 온다면 이번의 미국 환자를 대상으로 한 지맵 투약 건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일반인들의 임상시험에 대한 의혹과 오해는 막연히 ‘임상시험은 약효와 안전성이 불투명한 약물을 가지고 인간을 대상으로 시험을 시작하기 때문에 잘못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라는 고정 관념에서 출발한 것 같다. 하지만 동물실험을 통해 약물의 부작용과 효능을 검증한 후에야 인간에게 투약하게 되는 임상시험의 배경과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임상시험에 대해 가졌던 많은 의혹과 오해를 조금이나마 불식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김동욱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