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속도'와 '변화'에 빠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4개월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마하경영'은 더 힘을 받고 있다. 그동안 철저하게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부터다. 마하경영은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하기 위해 설계부터 엔진, 부품, 소재 등 모든 것을 바꾸듯이 새롭게 틀을 만들어 한계를 돌파하자는 취지의 경영철학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들어 미래 성장엔진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체질 개선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 CJ그룹과 갈등 등 해묵은 난제에서도 실마리를 찾고 있다.
‘이재용의 삼성’ 돛을 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7일 꽤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 중국 난징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만나 올림픽 후원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부터 후원사로 참여한 삼성전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후원하기로 합의했다. 후원 범위도 스마트폰에서 태블릿, 노트북, 데스크톱 PC, 프린터 등으로 확장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올림픽 공식후원 연장 계약에 도장을 직접 찍은 것에 주목한다. 이 회장이 병석에 누워있기는 하지만 이 부회장이 아버지 그늘 속에서 몸을 낮추던 ‘2인자’가 아니라 총수 역할을 하고 나섰다고 보고 있다. 중요한 계약은 그동안 이 회장이 직접 챙겨왔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IOC와 계약이 끝난 뒤에는 광둥성, 베이징, 난징 등 중국 현지 스마트폰 생산공장을 점검했다. IOC 행사에 앞서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꼽히는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당 서기를 면담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해외출장도 부쩍 잦다. 지난 7월에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개최된 앨런앤드코 미디어콘퍼런스에 참석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이 행사에는 전 세계 미디어와 정보기술(IT) 업계 거물이 대거 참석했다. 새로운 영역인 웨어러블 기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미국 스포츠 전문 브랜드인 언더아머 최고경영자(CEO) 케빈 프랭크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그룹 차원에서 키우고 있는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프로젝트를 위해 폭스바겐의 마르틴 빈터코른 CEO를 만나기도 했다. 그야말로 광폭 행보인 것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 자매지인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이 부회장을 두고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진화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겸손함, 열린 사고, IT 분야 두터운 인맥 등을 강점으로 꼽았다.
삼성은 지난해 9월부터 계열사들을 떼고, 붙이고, 가르는 사업구조 개편 작업을 하고 있다. 잘되는 사업,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사업을 강화해 더 강력하게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등 ‘이재용의 삼성’을 준비하고 있다.
변화에서 미래 성장동력 모색
삼성그룹은 사업구조 개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지배구조가 안정권에 올라서자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변화에서 미래를 찾는 것이다.
특히 적극적인 M&A가 눈에 띈다. 삼성전자가 2007∼2011년 지분투자를 하거나 인수한 업체는 6개에 불과했다. 2012년부터 다시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다른 IT 업체와 비교하면 잠잠한 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는 침묵했다.
하지만 올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달에만 2개 업체를 잇달아 사들였다. 스마트폰 사업 실적이 둔화되면서 위기를 맞자 구글, 페이스북 등처럼 활발한 M&A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9일 북미에서 시스템에어컨 등 공조기기를 판매·유통하는 콰이어트사이드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외신에서는 인수가격을 2400만 달러(약 244억원)로 추산했다. 삼성전자가 유통채널을 직접 사들이기는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북미 공조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의미 외에도 스마트홈 사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건물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공조시스템을 확보하면 다른 스마트홈 제품 판매가 쉬워진다.
같은 달 14일에는 미국의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개발 업체인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인수했다. 2012년 설립된 스마트싱스는 여러 가전제품이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플랫폼을 만드는 업체다.
재계에서는 상반기 정체를 보이다가 최근 공격적으로 M&A에 나서는 배경에 이 부회장이 있다고 판단한다. M&A 대상이 반도체, 의료기기, 헬스케어 등에서 모바일, 사물인터넷, 공조전문 유통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변화에서 미래를 찾는 수순이라고 분석한다.
재계 관계자는 11일 “M&A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가 지난 5월을 기점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한 직후부터 삼성그룹의 경영 전략이 ‘변화’와 ‘속도’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뉴리더십이 이끄는 삼성號 경영전략… 이재용의 ‘젊은 삼성’ 변화·스피드서 미래 찾는다
입력 2014-09-12 0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