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요나손은 ‘요술손’… ‘열린책들’만 알아봤다

입력 2014-09-12 04:45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53·사진). 지난해 7월 그의 데뷔작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때만 해도 그는 무명에 가까웠다. 1년여가 흐른 지금, 그의 첫 작품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하 ‘100세 노인’)은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7월 나온 두 번째 책 ‘셈을 할 줄 하는 까막눈이 여자’(이하 ‘까막눈이 여자’)도 10위 안에 든다. 그는 어떻게 1년 만에 무명작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요나손을 발굴한 출판사 ‘열린책들’(대표 홍지웅)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을 고르는 안목과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이 그것이다.

‘100세 노인’은 세계사의 주요 순간마다 ‘우연히’ 자리하게 된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를 배꼽 잡게 엮어낸 비범한 작품. 그러나 2009년 이 책이 스웨덴에서 출간됐을 때 관심을 가진 국내 출판사는 없었다. 기자출신 작가의 데뷔작으로 국내에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린책들은 달랐다. 해외 서점 사이트의 판매량, 평점, 독자 평을 꾸준히 살폈다. 이 책은 인구 900만명의 스웨덴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진가를 알아본 열린책들은 판권 계약 열기가 뜨거워지기 전에 요나손의 책을 먼저 계약했다.

1986년 설립된 열린책들은 외국문학 전문 출판사.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의 모든 작품을 출간하는 ‘전작 출간’ 방침을 갖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움베르코 에코, 파트리크 쥐스킨트, 폴 오스터 등이 주요 작가들이다. 프로이트 전집을 낸 출판사는 열린책들을 포함해 전 세계 4곳뿐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홍예빈 문학팀장은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내기 때문에 첫 책을 선정할 때 매우 공을 들인다”며 “이 작품은 일단 굉장히 재미있고, 소재나 캐릭터가 독특할 뿐 아니라 날카로운 풍자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판권을 계약한 후 고민은 시작됐다. 생소한 작가의 신간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결론은 페이스북이었다. 당시 가입자 6만명이던 열린책들 페이스북을 통해 퀴즈를 냈다. 출간 전 미리 책표지를 보여주며 노인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독자들은 ‘100세 노인은 로봇이며 가방에는 배터리가 들어있을 것’ ‘100세 노인은 콜라 중독자라 콜라가 잔뜩 들어있을 것’ 등 재기발랄한 답변을 내놓으며 이벤트를 즐겼다.

가제본 증정이벤트도 효과적이었다. 공식 출간 전에 만든 것이라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표지에도 공을 들였다. 각각 하늘색, 주황색의 경쾌한 표지, 통통 튀는 그림과 글씨체는 ‘100세 노인’과 ‘까막눈이 여자’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난 1년 동안 열린책들은 책만 잘 판 게 아니다. 페이스북 친구도 늘었다. 국내 출판사 최초로 최근 20만명을 돌파했다. 문학동네(13만5000명), 창비(10만3000명)가 2, 3위다.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