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의 돌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창업 4년, 제품 첫 출시 3년 만에 삼성을 따돌리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꿰찬 샤오미(小米·좁쌀)의 성공신화는 미스터리다. ‘짝퉁 애플’을 대놓고 표방하며 청바지 차림으로 스티브 잡스 흉내까지 내던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는 짝퉁 대신 ‘창조적 모방자’로 포장되고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던가. 레이쥔은 최근 리커창 총리와의 간담회에서 “시장에서 팔리는 샤오미 스마트폰의 절반은 짝퉁”이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짝퉁에서 싹튼 회사가 짝퉁을 비난하다니 아이러니다. 그리고 샤오미에 대해선 애플·구글·아마존을 융합한 새로운 창조적 모델이라고 자찬했다.
도대체 스마트폰 제조 기술도, 유통망도, 브랜드 가치도 없던 샤오미가 중국 시장의 최강자로 급부상한 비결은 뭘까. 요즘 삼성도 이를 연구하고 있다니 가히 신드롬 수준이다.
샤오미의 창조적 모방론
샤오미는 생산과 유통에서 거품을 빼면서 저가 전략을 썼다. 각국에서 조달한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생산하고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직판하며 생산·재고·유통비용을 줄였다. 제품 홍보는 인터넷과 SNS를 활용했다. 여기에 소비자를 목마르게 하는 헝거마게팅도 가미했다. 최근 인도에서 이런 방식으로 10만원대 저가 스마트폰 훙미(紅米) 1S 4만대를 4.2초 만에 팔아치웠다.
특히 샤오미는 처음부터 모바일 생태계를 겨냥했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미유아이(MIUI)란 자체 플랫폼을 먼저 발표하고 1년 뒤 휴대폰을 출시했다. 이후 샤오미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TV 등에 MIUI를 얹어 팔고 있다. 모바일 생태계를 장악하는 힘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운영체제라는 것을 미리 간파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자체 운영체제 타이젠(Tizen)을 만들어놓고도 구글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것과 출발부터 다르다. 역으로 보면 애초 짝퉁 애플로 시작할 때부터 스마트폰은 모바일 생태계를 점령하기 위한 미끼였다는 얘기가 된다.
사실 샤오미의 성공은 거대한 중국 시장과 짝퉁에 관대한 문화, 자국민들의 애국심, 중국정부의 보호정책이 어우러진 결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나 미국, 유럽 등에서 샤오미처럼 대놓고 베끼기를 했다면 뭇매를 맞고 퇴출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샤오미는 중국시장의 독특한 틈새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이제 세계시장을 넘보고 있다. 만약 성장세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최소한 중국시장에선 애플과 삼성이 샤오미 상표로 스마트폰을 납품하는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10일 독일 베를린 전자전시회 ‘IFA 2014’에선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 TV 업체인 TCL이 110인치 곡면 UHD(초고화질) TV와 차세대 TV로 주목받는 ‘양자점 TV’를 공개하며 세계 전자업계를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런 기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짝퉁으로 여겼던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에 목이 바짝 탄다.
중국 IT 공룡들의 위협
물론 아직 중국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삼성과 LG의 품질, 브랜드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점점 목을 조여오는 게 심상찮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은 짝퉁을 먹고 공룡으로 성장한 중국 업체들의 쥐라기 공원을 연상시킨다. 전통 제조업뿐 아니라 인터넷 포털과 전자상거래, 부동산 등 모든 분야에서 공룡들이 득실하다. 이들은 독특한 중국식 토양에서 배를 채우고 힘을 축적한 뒤 쥐라기 공원을 뛰쳐나와 이리저리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 전자업계 공룡들은 이제 삼성과 LG까지 집어삼키겠다며 발톱을 세우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공룡들의 역습을 퇴치할 무기를 갖고 있는가.
노석철 산업부장 schroh@kmib.co.kr
[데스크시각-노석철] 중국 짝퉁의 역습
입력 2014-09-11 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