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치의는 개인적으론 최고 의사, 출신 학교로서는 최고 의술의 대학병원을 가졌다는 상징성 때문에 큰 영예다. 왕조 시절 어의(御醫) 아닌가. 주치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차관급) 예우를 받으며 경호실 소속인 의무실의 보좌를 받아 대통령의 건강을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자리다. 청와대에 상주하지는 않지만 대통령한테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전국의 최고 의료진 30명 정도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지휘하고, 대통령 해외 방문 때는 공식수행원에 이름을 올린다.
청와대가 주치의를 공식적으로 임명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취임한 1963년부터다. 종두법을 도입한 지석영 선생의 종손인 내과 개업의 지홍창 박사가 1호다. 70년 주치의가 된 민헌기 박사는 흉탄에 쓰러진 육영수 여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주검을 눈물로 수습해야 했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민병석 박사는 83년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때 목숨을 잃었다.
과거 대통령들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의사를 선호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각각 모교인 경북고(최규완)와 경남고(고창순) 후배를 주치의로 뒀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시절 단식투쟁할 때 자신을 돌봐준 허갑범·장석일 박사를 택했다. 이명박 대통령 땐 사돈인 최윤식 박사가 주치의였다. 역대 주치의는 지난주 사표를 낸 이병석 박사(산부인과) 한 명을 빼곤 모두 내과 의사다. 서울대 출신이 주류이며 비서울대 출신은 민병석(가톨릭대) 허갑범(연세대) 장석일(성애병원) 이병석(연세대) 박사뿐이다. 이명박정부 출범 때 대통령 모교인 고려대가 주치의 후보를 강력히 추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병석 주치의 후임으로 서울대로부터 4명의 후보를 추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대 관심은 최초의 여성 주치의 탄생 여부. 후보군에는 안규리 신장내과 교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 교수는 서울대 첫 내과 여성 교수란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황우석 줄기세포’ 연구에 참여한 바 있다. 대통령 주치의는 무엇보다 본인의 의술이 뛰어나야 하며, 자문위원단을 통솔하는 리더십과 비상사태 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건강을 돌봐줄 의사를 정하는 데 개인적 친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지나치게 정실에 얽매이는 건 피해야겠다. 박 대통령의 취임 후 고위직 인사가 좋은 평을 못 받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대통령 주치의
입력 2014-09-11 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