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파란 천막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눈을 떼지 못했다. 능숙한 솜씨로 양파와 감자를 손질하고 밀가루 반죽 기계를 다루며 돼지고기와 야채를 볶아내는 장면이 볼수록 신기한 듯했다. 그러다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자 천막 안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아낙네와 어린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추석 이튿날인 9일 오전 필리핀 레이테주 톨로사 시청 앞 광장. 파란색 지붕의 천막 3개동 안에서 경기 광주 창성시민교회(장제한 목사) ‘자장면 선교 봉사’ 팀원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줄 자장면을 만드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톨로사는 타클로반과 함께 10개월 전 초강력 태풍 하이옌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장로와 권사, 집사 등이 모인 일명 ‘자장면팀’ 17명은 올 추석 연휴를 반납했다. 이들은 타클로반 현지에서 9개월째 태풍피해 복구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라우부대(부대장 이철원 대령) 장병들과 함께 지난 8일부터 피해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자장면 맛을 선보이고 있다. 오는 12일까지 아라우부대 장병을 포함해 총 1만명에게 자장면을 대접할 계획이다.
교회 측은 수개월 전부터 이 사역을 준비해 왔다. 부대 측 도움으로 일찌감치 20㎏들이 밀가루 40포대와 각종 조리장비 등을 배편으로 보냈다. 돼지고기 160㎏과 양파, 감자 등 부식재료도 부대 지원으로 미리 준비했다. 서울 소망교회(김지철 목사)는 이번 사역에 선교비를 후원했고 세계선교부장 등 2명을 사역 현장에 파송했다.
장제한 목사는 “필리핀 지역 자장면 봉사만 5년째”라며 “그동안 파악한 현지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살짝 더 짭짤하게 요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비록 한 끼 식사에 불과하지만 이곳 분들이 한국과 한국인의 정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생전 처음 접하는 한국의 자장면 맛은 어땠을까.
주부인 세실 사발라(45)씨는 밝게 웃으며 “마라사, 마라사”를 외쳤다. ‘마라사’는 현지 방언으로 ‘맛있다’는 뜻이다. 크리스티나 베레시오(36·여)씨는 “처음 먹어보는 것이어서 좀 이상할 것 같았다”며 “그런데 면이 생각보다 부드러워서 먹을 만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만든 자장면은 총 1500여 그릇. 인근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시청 직원, 도로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베띠캅’(자전거 형태의 운송수단) 운전기사, 인근 공사장 인부들도 자장면을 함께 즐겼다. 낮 12시부터 3시간여 동안 배식을 기다리는 줄은 구불구불 70m 넘게 이어졌다.
앞서 추석 당일인 8일 아라우부대에 도착한 자장면팀은 부대 장병 등 500여명의 저녁식사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만들어 대접했다. 박현석 상병은 “수백명 분량의 자장면을 만들면서 맛을 내는 게 신기하다. 맛있다”고 말했다.
올해 10년째인 창성시민교회의 국내외 자장면 선교·봉사활동은 비중 있는 사역으로 자리 잡았다. 주방장 출신의 교회 성도 덕분에 자연스럽게 시작된 활동은 이제 제면·반죽 기계 등 1억원 상당의 조리장비까지 갖추고 매월 2∼3차례 전국을 누빈다. 주요 사역지는 백령도와 연평도 등 도서지역과 군부대, 교도소, 시골교회 등이다. 적게는 200∼300명, 많게는 하루 8700명분까지 만들어낸 적이 있다. 신정필(68) 장로는 “자장면 선교나 봉사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기도로 사역을 준비하며 현장에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군중앙교회(임광상 목사) 목회자와 성도들도 추석 연휴 동안 아라우부대를 방문해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헌옷 1300여점 등을 기탁했다.
타클로반·톨로사=글·사진 박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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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情·예수 사랑에 “맛있어요” 감탄
입력 2014-09-11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