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소통이 답이다

입력 2014-09-11 03:33

1982년 4월 2일 발생한 포클랜드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본토에서 400㎞ 정도 떨어진 영국령 포클랜드를 침공했던 아르헨티나는 2개월12일 만에 영국에 손을 들었다. 기자 출신인 어네스트 듀피와 역사학자인 그의 아들 트레버 듀피가 지은 ‘세계 군사사 사전’은 “영국은 8000마일(약 1만3000㎞)이 넘는 긴 병참선을 극복, 단기간에 매우 어려운 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논평했다. 또 “이 전쟁은 고도 정밀무기의 훌륭한 시험장이었다. 그러나 잘 훈련되고, 결의에 찬 육군, 해군 및 공군 요원들에 의해 승리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은 전쟁”이었다고 덧붙였다. 수직 이착륙 함재기 해리어 등 첨단 무기들이 기여한 바 크나 영국군의 우수한 자질도 중요했다는 것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도 포클랜드 전쟁에서 많은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고도 아르헨티나가 진 것은 소통이 차단된 ‘닫힌 군사문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군은 장교는 위신과 위엄 유지를 위해 병사들과 함부로 접촉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이런 전근대적인 문화가 의사소통을 막아 패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군은 계급의식을 없애고 유머러스한 대화가 일상화되도록 했고 지휘관이 병사들과 똑같이 어려움을 겪으며 의식적으로 유대감을 강화했다. 수직적 결속과 의사소통이 활성화된 ‘열린 군사문화’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무기체계도 중요하나 군사문화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건강한 군사문화의 지표는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가능한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군은 소통부재가 불러온 처참한 사태를 겪고 있다. 지난 4월과 6월 각각 발생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사건과 22사단 최전방 일반전초(GOP) 총기사건은 가혹행위와 집단 따돌림을 알릴 수 없었던 ‘소통부재’가 한 원인이었다. 병사들은 “간부들은 우리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호소한다. 사건이 터진 뒤 간부들은 대부분 “이런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위간부일수록 더했다. 지속적인 폭행이 있었다는 보고에도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둔감했다. 소통은 혈관과 같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몸은 병들기 마련이다.

군내 소통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회 국방위원회 운영개선 소위원회에서 의원들은 군내 소통수단 대부분이 불통이라고 질타했다. 부대를 방문해 직접 시도해보니 긴급신고망으로 국방부 인권센터와 연결되는 데 5분 이상 걸렸고 연결된 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안 들릴 정도로 감도도 떨어져 애타는 사정을 호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컴퓨터로 신고하려 하자 과정이 복잡해 10여분이 걸렸다. 있으나 마나한 소통수단이었다. 이런 수단들이 제대로 운용되는지조차 점검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군내 소통뿐 아니다. 사회와의 소통에서도 군은 낙제점을 받고 있다. 보안을 이유로 군의 사정은 어떻게든 꼭꼭 숨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군내 부조리가 곪을 대로 곪아도 도움 청할 줄 몰랐다. 스스로 개혁할 수 있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군의 자정능력, ‘셀프 개혁’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이제는 많지 않다.

최근 병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군의 제한된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채 군에 온 병사들이 건강한 병영생활을 하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세대 눈높이에 맞는 정신교육을 위해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조해야 한다. 문화 혜택에 목말라하는 병사들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군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보건복지부의 도움도 필요하다. 인권법 제정과 군옴부즈만제도에 대해서도 ‘곤란하다’며 손사래부터 칠 일은 아니다. 군은 환부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제대로 진단받아야 치유책이 나온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