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 읽기] 名醫 찾아 서울로 서울로… 의료 양극화는 더욱 심화

입력 2014-09-16 03:08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질환의 종류를 막론하고 환자들이 갖는 첫 번째 궁금증이다. 암을 진단받았다면 이러한 궁금증은 더하다. 수술의 명의는 누구인지, 방사선 치료의 명의는 누구인지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일까. 암 분야의 명의를 소개하는 각종 프로그램과 서적들이 인기다. 수요자인 환자 입장에서는 발품 팔아가며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던 과거에 비해 손쉽게 내 병을 가장 잘 치료해줄 의사를 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단점도 생겨났다. 지방과 서울 간의 의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신문과 방송에서 소개된 명의는 대부분 서울에 위치한 병원의 의료진이다. 지방 암환자들이 서울로 올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치료 중인 대장암 환자 박희순(가명·52)씨는 “TV에 소개된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교수님들이셨어요. 서울에서 치료받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어느 환자가 명의에게 치료받고 싶지 않겠어요. 돈 없고 빽 없더라도 나 살려줄 의사가 서울에 있다고 하니까 기를 쓰고 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한 언론사에 소개된 의료진은 명의가 되어 많은 환자들이 찾는다. 수술 실적이 오르고 수술 성과도 날로 좋아진다. 어려운 케이스를 치료할 기회도 많아진다. 성공 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리고 동시에 지방병원은 더욱 소외된다. 지방 대형병원에서 근무 중인 의사는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을 치료해서 살리고 싶은 것이 의사 마음인데, 암 진단을 받자마자 서울로 갈 수 있게 소견서 써 달라고 하니 마음이 복잡하다”고 말했다.

치료 실력과 수많은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명의 선정이 이뤄질 테지만 서울에서 근무해야 명의가 될 수 있다는 푸념의 목소리도 있다. 대전에 위치한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빅5에 근무하시던 교수님을 2년 전 우리 병원으로 어렵게 모시고 왔다. 우리 병원에 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수술 실적 면에서든 성과 면에서든 명의로 불리셨다. 그러나 지방의 암환자들이 모두 서울로 몰리니까 연간 수술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어려운 환자 케이스도 만날 수 없으니까 실력을 발휘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거다. 교수님이 어느 날은 우리 팀을 찾아와 ‘나보다 못한 후배가 명의가 돼 있더라’고 말씀하시는데, 모시고 온 우리가 죄송했다”고 말했다. 서울서 지방으로 어렵게 내려온 명의가 본의 아니게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환자가 없는 상황을 몇 년 견디다 결국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고 한다.

혹자는 지금과 같은 환경이 의료진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의료진과 병원 정보가 절실한 환자들에게 감사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 언론사에 소개됐던 의료진이 매체만 바뀌어 다시 명의로 등장하는 현실은 재야에 묻힌 명의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해석하기 힘들다. 환자도 재탕하듯 반복하는 명의 보도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또한 언론은 부주의한 보도가 의료양극화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