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인사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터져 나오는 것이 ‘도덕성’입니다. 한마디로 착하고 정직하게 살았느냐를 검증의 잣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도 도덕적 선행 여부로 사람을 평가하고, 나아가 구원의 문제로까지 해석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천국이 있다면 비교적 착하게 살아온 내가 천국에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의 타락한 성품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죄의 대가로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 단 한 사람도 예외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을 통해 구원의 길을 찾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중심에는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면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착하게 산다는 기준은 누가 정합니까. 어느 정도 착해야 합니까. 착하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손해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상을 받을 정도는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제각각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속죄로 선행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수천 명을 구제하고, 수십억원의 기부금을 내놓으면 자신이 범한 죄를 덮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많은 선행과 구제를 했을지 모르지만 선행과 구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해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나 공로를 쌓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우리 죄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선행으로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보상심리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선행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죄가 없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지옥은 선행이 부족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죄 때문에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신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2) 그렇습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내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천국은 주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옷을 입고 가는 곳입니다. 내가 만든 옷, 다른 사람이 입혀 주는 옷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입혀 주시는 의의 옷을 입고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입니다.
이정우 목사(제주 시온교회)
[오늘의 설교] 천국은 어떻게 가는가
입력 2014-09-11 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