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증거조작 논란 이후 또 증거 위법수집… 법원, 檢·국정원 수사허점 조목조목 지적

입력 2014-09-06 03:32

법원은 5일 직파간첩 사건 피고인 홍모(41)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진행한 간첩 수사의 절차적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특히 검찰은 유우성(34)씨 간첩 증거 조작 논란이 불거진 이후 진행된 홍씨 사건 수사에서 형사소송법 절차를 꼼꼼히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형식 논리에 치우쳐 사건의 실체에 눈을 감은 판결"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 증거를 배척하면서 검찰이 '미란다 원칙' 등 형사소송법의 기본적인 부분을 충분히 지키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검찰은 지난 2월 20일 홍씨를 신문하면서 "변호인 선임권이 있고, 진술거부권이 있는데 행사하겠느냐"고 물었다. 홍씨는 "안 하겠다. 사실대로 얘기하겠다"고 답했고, 그대로 조사가 진행됐다. 검찰은 '진술을 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등의 구체적인 부분은 설명하지 않았다. 당시 홍씨에 대한 신문은 간첩 증거조작 논란으로 대검에 진상조사팀이 꾸려진 지 불과 이틀 뒤 진행됐다.

재판부는 "홍씨는 신체의 자유가 장기간 제약돼 있었고, 홍씨가 대한민국의 형사소송법을 잘 모르는 점을 감안할 때 해당 내용도 설명돼야 했다"며 "해당 증거는 형사소송법을 위반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홍씨가 쓴 자술서 역시 변호인 조력권이 고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돼 위법수집증거라고 봤다. 홍씨가 법원에 낸 반성문 등에 대해서는 "홍씨가 심리적 불안감 속에서 작성한 것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홍씨에 대한 2∼8회 신문 과정에서 영상 녹화를 하지 않아 홍씨가 부인한 혐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검찰은 선고 이후 이례적으로 언론 브리핑을 열어 법원 판결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검찰은 "홍씨는 앞서 국정원 수사관들로부터 12번 조사를 받으며 '미란다 원칙'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구속 직전 받은 영장심사 때도 판사 앞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시인했었다"고 반박했다. 또 "국정원 합신센터 조사부터 변호인 조력권이 인정되면 어떤 간첩이 간첩이라고 말하겠느냐"며 "법원 측 판결대로라면 합신센터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법원이 홍씨의 반성문과 의견서 등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본인이 쓴 반성문이 7개인데 이를 인정 안 하는 것은 간첩 수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홍씨 측 변호를 맡은 민변 변호인 측은 "검찰은 홍씨에게 자백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 등 형사소송법상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국정원 합신센터의 탈북자 조사도 변호인 조력권을 인정한 상태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법정에는 항소심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씨도 방청했다.

나성원 문동성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