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달을 보니 둥그렇게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추석 때는 완전히 동그랗게 되겠지요. 그날도 둥근달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지요. 벌써 30여년 전이네요. 뭐에 정신이 팔렸는지 졸업을 앞두고도 취업 준비가 뒷전이었던 저를 선배는 크게 나무랐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라”면서 이렇게 말했었지요.
“여자들 원서도 받고, 꼭 시험 보는 회사를 찾아라. 그리고 1등을 해라. 그래야 떨어뜨리지 못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빵빵한 스펙’을 갖췄으면서도 대기업에서 원서조차 받아주지 않아 중소기업에 취직했던 선배가 들려준 ‘취업 팁’이었습니다. 새삼 선배의 말씀이 생각난 것은 요즘이 하반기 공채시즌이기 때문입니다. 모집요강을 살펴보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군필자(軍畢者)에 한함’ 이런 거 없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여성 인력 채용에 적극적입니다. 롯데그룹은 40%를 여성으로 채용한답니다. 선배는 지금 ‘실력으로만 뽑는다면 60% 이상 뽑아야 될 걸’ 이렇게 생각하시죠. 물론 저도 동감입니다만 아직 그런 세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롯데그룹은 여성 인력에 관한 한 최초의 기록을 여러 개 갖고 있습니다. 2011년부터 국내 대기업 최초로 여군 장교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채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10대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자동 육아휴직제를 도입했습니다. 출산휴가가 끝난 뒤 1년의 육아휴직을 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만 회사에 별도 승인을 받는답니다. 지난달에는 육아휴직으로 쉬고 있는 엄마 사원들의 업무 복귀를 응원하기 위해 복직 플래너 ‘기다립니다. 기대합니다’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선배, 결혼한다고 임신했다고 퇴직을 강요하던 때와는 정말 다르지 않습니까.
이 회사 참 기특한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이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책임이 회사에도 있다’는 판례를 남긴 불명예스런 1호의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2000년 롯데호텔 여직원 40명은 상습적으로 음담패설을 일삼은 이사 등 7명과 회사(롯데호텔), 신격호 대표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년 뒤 이들은 승소했고, 재판부는 “부서 책임자 등의 간부가 성희롱 사실을 알았다면 회사도 이를 알았다고 봐야 한다”며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할 의무가 회사에 있다고 인정했지요.
그 일이 사랑의 매가 되었던 걸까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2006년부터 여성 인력을 적극 채용할 것을 지시했고, 여성 인력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008년 95명에 불과했던 과장급 이상 여성 간부사원이 지금 865명이나 된답니다.
선배, 여성 인력 활용은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여서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여성 CEO’께 롯데그룹을 벤치마킹하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이태 전 저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아, 선배와도 통화했었지요. 그때 우리는 ‘정치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든가 ‘생물학적인 여성일 뿐’이라는 항간의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그래도 남성과는 다를 것”이라며 호호 하하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나올 남성 대통령들이 “여성 대통령도 그랬는데…” 하며 오리발을 내밀면 어떻게 할까. 걱정 하나 더 얹었을 뿐입니다.
선배, 이번에 앞치마 몇 벌 더 준비하려고 합니다. 우리 집 남자들에게도 입히려고요. 추석 편안히 보내시고 후일담 기대해주세요.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내일을 열며-김혜림] 롯데 하반기 공채요강을 보며
입력 2014-09-06 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