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사건 계기 살펴본‘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입력 2014-09-05 05:46
군 검찰이 지난 2일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 가해병사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키로 하면서 법원의 살인죄 판단기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일병 사건뿐만 아니라 울산·칠곡 아동학대 사망사건과 세월호 선원들 기소 당시에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 여부가 논란이 됐다.

살인 또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범인이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법원의 기준은 엄격한 편이다.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란 범인이 자신의 폭행 등으로 상대방이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죽어도 어쩔 수 없다. 될 대로 돼라'고 생각하는 범의(犯意)다. 피고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기 때문에 자백하지 않는 이상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대법원 판례는 범행 경위·동기, 흉기의 유무·종류·용법, 공격 부위와 반복성, 사망 가능성, 이후 조치 등 모든 정황을 고려토록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지난달 28일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통신장비 업체 대표 김모(42)씨에 대해 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카지노에서 수십억원을 탕진한 김씨는 지난해 자신이 제조한 청산가리를 커피에 타 돈을 빌려주지 않는 지인에게 마시게 했다. 피해자는 응급실에 실려가 목숨은 건졌다. 검찰은 김씨가 살인을 의도한 것이라 봤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김씨가 직접 청산가리를 복용해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김씨는 지인이 '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공격 부위와 범행 후 조치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중국동포 강모(44)씨는 지난해 11월 함께 살던 룸메이트를 흉기로 찔러 다치게 한 혐의(살인미수)로 기소됐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가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울산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경우 계모 박모(41)씨는 아이가 의식을 잃자 119에 전화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점이 주요하게 고려돼 살인죄 대신 상해치사죄를 적용받았다.

반면 치명적인 부위를 공격하거나 공격의 정도가 심할 때는 살인죄가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2개월 된 아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며 마구 때려 숨지게 한 미혼모 신모(24)씨는 살인죄로 지난달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의정부지법 형사11부는 아이의 배 부위에 나타난 치명적인 손상을 고려해 볼 때 신씨가 충분히 사망 가능성을 예견하면서도 폭행을 멈추지 않은 것이라 판단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