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정치 이데올로기 얘기할 줄 알아야”

입력 2014-09-05 03:45
광주비엔날레 제공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수석큐레이터로 일했을 때보다 (밀라노) 프라다 재단 관장으로 일하니 더 유명해졌어요(웃음).”

백발이 성성한 73세 미술계 거장은 여유가 넘쳤다. 때로는 농담을 던지며 좌중을 웃겼다. 그러나 미술계 얘기를 할 때는 진중했다. 프라다 재단 제르마노 첼란트(사진) 관장은 4일 광주 북구 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삼성미술관 리움 10주년·광주 비엔날레 20주년 기념 공동 포럼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검정 셔츠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채 단상에 올랐다. 그는 작가와 전시 기획자들에게 예술이 발전하려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과거 경험한 실패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벨벳 벽에 전시되던 것들이 하얀 벽에 걸리면서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대중과 작가 간 교류가 생겼지만 이 같은 전시 방식이 오랜 세월 보수적으로 지켜진 게 문제이지요.”

그는 5일부터 시작되는 광주비엔날레 주제 ‘터전을 불태우라’를 인용해 “옛 터전을 불태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예술가들과 전시 기획자들이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시인이나 음악가들은 시와 음악으로 정치적 이슈를 이야기하는 데 반해 미술을 전시하는 (비엔날레) 전시장과 미술관에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없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홍성담 작가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이 대통령 희화화 논란으로 비엔날레 특별전에 걸리지 못하면서 광주비엔날레는 파행을 겪었다. ‘세월오월’ 이슈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더니 “대한민국의 정치적 문제인 데다 내용을 잘 몰라 나서서 얘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가 해야 할 역할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첼란트 관장은 굳이 프라다라는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재단 이름을 수식어로 내세울 필요가 없는 미술계 유명 인사다. 이탈리아 평론가였던 그는 196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초라한 미술)’ 운동을 이끌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아르테 포베라는 모래나 나뭇가지 등 일상적 소재를 이용해 구체적인 삶의 문맥에서 예술을 바라보자는 전위적 미술운동이다. 89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현대미술 부문 수석큐레이터, 97년 제47회 베니스비엔날레 큐레이터로도 활동했다.

프라다 재단 관장이 된 건 95년이다. 이탈리아 패션 기업인 프라다 창업자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 수석디자이너가 남편 파트리지오 베르텔리와 함께 93년 밀라노에 전시 공간을 열었고 2년 뒤 재단으로 재정비하면서 첼란트를 관장으로 불렀다. 포럼이 끝난 뒤 만난 첼란트는 “미우치아는 예산에 제약을 주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회사에서 나온 제품과 재단 활동이 엮이는 것도 원하지 않았는데 이는 미술을 지원하는 기업들이 지향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광주=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