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죠. 누구나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멈추지 않고 제 길을 갈 겁니다.”
지휘자 김동민(42·사진)씨의 표정과 어투는 부드러웠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는 2010년 미국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NYCP)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설립해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료 클래식 공연을 내걸고 지금까지 40여 차례 콘서트를 개최해 왔다. 17년 만에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기 위해 귀국한 그를 4일 만났다.
연세대 음대에서 비올라를 전공한 그는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명문 인디애나 음대에서 비올라 전문연주자 과정을 밟던 중 ‘관현악지휘법’ 수업에서 두각을 나타내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성공적인 음악가의 길을 가고 있던 그는 유학생활 10년 만인 2008년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우연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한 흑인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는 음악감상실 한쪽의 클래식 코너에서 매일 2시간씩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김씨는 할아버지의 음악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10년간 유학생활을 돌아보며 더 큰 무대로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던 때였다”며 “도서관 할아버지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내 길이라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이후 아내와 함께 뉴욕으로 떠난 김씨는 무료 공연 오케스트라를 꾸리는 데 힘을 쏟았다. 김씨는 당시 활동에 대해 “연애하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한국인 친구와 그의 취지에 동감한 체코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등을 필두로 정상급 연주자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15∼20명 규모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는 지난 4월 소프라노 조수미씨와 함께 뉴욕 뉴저지 워싱턴DC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4개 도시 투어공연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김씨는 2010년 11월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무료 클래식 공연을 시작한 지 2달째, 관객이 40명밖에 오지 않았다. 미국의 핼러윈 축제 기간에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무료 공연이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하지만 김씨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무료 공연은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소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인간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는 음악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sharky@kmib.co.kr
미국의 소외계층에… 값없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 선율
입력 2014-09-05 03:46